[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여름잠 그리고 겨울잠

윤학배 | 기사입력 2024/09/02 [09:06]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여름잠 그리고 겨울잠

윤학배 | 입력 : 2024/09/02 [09:06]

 

요즘처럼 덥고 무더운 날에는 어디 여름잠이라도 잘 수 있는 시원한 동굴에라도 들어가 무더위를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이제 곧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가을이 성큼 와 있겠지만 열대야가 이렇게 지속되는 기간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난관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야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난방을 하거나 두꺼운 옷을 입지만 동물들의 여름나기와 겨울나기는 참으로 신비하기만 하다. 

 

이런 면에서 동물들의 동면冬眠은 기막힌 생존 전략이자 신비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아마도 치열한 진화의 산물이자 기후에 적응하는 생명체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동물의 동면이라고 하면, 단순히 혹독한 겨울을 버티어 내는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면은 그냥 추운 겨울을 피해 시간을 보내거나 생명 연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죽기 살기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것, 다시 말해 동면을 하는 이유는 새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위한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이러한 동면의 대표선수가 바로 곰이다. 곰은 동면을 하는 동안 새끼를 낳고 키워서 봄이 되면 굴 밖으로 나온다. 이처럼 곰에게 동면은 생명을 잉태하고 새 세대를 키우는 진화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바로 생명의 시간이기도 하고, 자신을 최소화함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이는 생존 게임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막 새로 태어난 어린 곰에게 동면하는 굴은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이자 생명 연장의 장소다. 동면의 가치는 자기의 때가 되면, 즉 봄이 되면 깨어나는 데 있다. 참으로 위대한 동면이다.

 

그런데 동면하는 물고기도 있을까? 놀랍게도 동면하는 물고기가 있다. 물고기 중 동면을 하는 유일한 어종은 갯벌에 사는 ‘짱뚱어’이다. 짱뚱어는 원래 잠을 자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잠둥어’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잠둥어가 짱뚱어가 된 것이다. 짱뚱어는 추워지는 겨울 동안에는 갯벌에 굴을 파고 들어가 4월 초까지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즉, 곰처럼 동면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더운 여름에 여름잠, 다시 말해 동면이 아닌 하면夏眠을 하는 해양 생물이 있다.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해삼인데 해삼은 그 먹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바닥의 저서생물을 먹으면 검은색 흑해삼이 되고 미역이나 다시마를 먹으면 홍해삼이 된다. 그런데 여름에 바다 수온이 25도 이상으로 높아지면 해삼의 먹이인 바다 밑 저서생물이 사라지고 미역과 다시마가 성장을 멈추고 흐물흐물 녹아버리게 된다. 이처럼 바닷물이 더워져 먹이가 사라진 해삼은 활동을 멈추고 바닥의 뻘이나 바위 밑 또는 깊은 바다로 몸을 감추고 시원해질 때까지 여름잠 하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보기보다 똑똑한 해삼인 셈이다. 

 

그러기에 해삼은 겨울을 지나 봄철이 되어야 제대로 살이 오르고 맛도 좋다. 여름잠에서 깨어난 직후인 가을 해삼은 껍질만 남게 되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부산 기장군은 기장미역으로 유명하다. 겨울철에 기장에 들르게 되면 길거리에서도 크고 싱싱한 미역을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겨울이 바로 미역의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해삼처럼 대부분 해산물이 보통 여름보다 겨울에 싱싱하고 맛도 좋다. 제철 과일이 좋듯이 제철 수산물이 맛있는 법이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우리 인간도 일생에 한번만이라도 하면이나 동면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좋지 않을 까 생각한다. 확실하게 동면에서 깨어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저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깨어나는 시간에 그동안 자기가 살아 온 과거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곰의 동면처럼 우리에게도 동면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일상생활에 짓 눌려 바쁜 우리들에게 동면이든 하면이든 아니면 장기 휴가를 가든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한번쯤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면 후에는 새롭게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면 이 세상이 좀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새 생명과 희망으로 가득한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 동면은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기대되고 설레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동면을 허許하라.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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