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이 '대리수술' 면죄부…"면허 박탈해야"

이한수 기자 | 기사입력 2024/08/22 [13:55]

법원 판결이 '대리수술' 면죄부…"면허 박탈해야"

이한수 기자 | 입력 : 2024/08/22 [13:55]

대리수술 만연, 솜방망이 처벌도 원인

환자와 합의 시 양형 감경 요소 작용

인천21세기병원, 원장 3명 집행유예로 그친 선례 있어

 

공판 앞둔 연세사랑병원

영업사원 상주하며 수술업무 전반에 참여

진료기록부 상 집도의 거짓 작성까지

 

"불법 의료 행위 밝혀지면 의사 면허 박탈해야"

 

해외에서는 '살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리수술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다보니 여전히 만연하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논의 중인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 법제화'·'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이 의사 면죄부로 작용할 소지가 높아 우려된다.

 

지난 21일 본지와 만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대리수술과 같은 불법 의료 행위를 저지르면 면허를 반드시 박탈해야 한다"며 "처벌도 약하고 법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보니 대리수술이 만연하지만 정부에서도 의료계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1년 인천 남동구에 있는 '인천21세기병원'은 수년간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에 의해 불법 수술이 이뤄졌다. 안 대표에 따르면,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듯 의학 지식이 없는 직원이 환자의 수술 부위를 절개하거나 봉합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병원장 등 6명이 구속됐고 총 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대리수술과 같은 불법 의료 행위를 저지르면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한수 기자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연세사랑병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본지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과 경찰 기소 의견서를 종합해보면, 수년간 대리수술을 자행했고 이 때문에 병원장을 비롯해 소속 정형외과 의사 4명, 간호조무사 1명, 영업사원 4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연세사랑병원 병원장은 인공관절치환술 수술을 하는 경우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1명 외에 보조할 의료인이 2명 필요하지만 전문 인력 부족을 핑계로 외부 영업사원을 대동해 수술실에 들어가 집도의를 보조하게 하는 의료행위를 지시했다. 경찰은 기소의견을 통해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영업사원 9명은 수술실 및 대기실 등에서 상주 근무하며 무 1만3000건에 달하는 수술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봤고, 검찰은 이 중 2021년 7월과 8월을 특정해 피해자를 150여명으로 추려 기소했다.

 

더불어 유령수술을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부 상 집도의를 거짓으로 작성한 사실도 밝혀졌다. 의료법 제22조 제3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 기재·수정해서는 안된다. 동법 제88조는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의료법 위반'을 죄명으로 ▲의료법 제87조의 제2항 제2호 ▲의료법 제27조 제1항 ▲의료법 제88조 제1호 ▲의료법 제22조 제3항 ▲형법 제30조 ▲형법 제37조 ▲형법 제38조 등을 적용했다.

 

'인천21세기병원'의 경우, 1심 재판부는 대리수술이 병원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해 대표 원장에게 징역 2년, 공동 원장 2명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022년 2심에서는 원장 3명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피해자 19명과 모두 합의했고 이 중 상당수가 선처를 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 대표는 "이렇게 환자와 합의를 하면 형량이 낮아지는 점을 이용한다"며 "이 때문에 비의료인이 면허를 가진 외부 의사를 불러서 바지사장으로 세워놓고 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는 일명 사무장병원도 존재하고, 21세기병원 같은 네트워크병원에서 불법 의료행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9월 중 법원 1심 공판을 앞두고 있는 연세사랑병원의 사례를 지켜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인천21세기병원의 경우 수사기관이 확인한 피해자가 19명이었던 반면,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1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있다고 추산되는 경우에도 법원이 병원장에게 면죄부를 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생기는 궁금증이다.

 

  © 문화저널21 DB

 

법적 책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반드시 막아야"

 

여기에 더해 정부가 지난 2월 내놓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차원에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은 고난도·고위험 수술이 많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책임을 덜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 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보험·공제(보상한도가 정해진 보험)에 가입했다면 원칙적으로 의사를 법정에 세우는 일(공소 제기)을 제한하는 것이다. 미용, 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가 적용 대상이다. 

 

종합보험·공제(피해 전액 보상)에 가입했다면 필수의료 의사에 한해 진료 과실로 환자 상해가 발생하더라도 환자 의사와 무관하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사망 사고라면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해도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필수의료 의사에게는 형을 감면하는 특례도 부여한다.

 

안 대표는 "만약 지금 상태로 법안이 통과되면 의사가 사망 사고를 내더라도 무조건 면허 박탈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의료 사고 발생 시 병원에서 보상조차 안해줘도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법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저널21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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