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8/21 [13:53]

[홍사라의 풍류가도]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홍사라 | 입력 : 2024/08/21 [13:53]

  © 홍사라

 

얼마 전 친한 동생 A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혹시 서울 쪽이나 경기도 쪽에 임시 보호나 유기견 관심 있는 지인이 있을까요? 전에 말했던 착하고 순한 피부병 걸린 비숑아가 오늘 주인이 안락사 문의 왔대요. 안락사 문의가 왔는데, 아이가 너무 안되어서 원장님이 비밀리에 치료시키고 다른데 입양 보내려나 봐요. ㅠㅠ”

 

설마.

저 카톡을 받기 일주일쯤 전인가 A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A는 우리 집 강아지들이 아기 때부터 미용해준 강아지 미용사다. 요즘에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6개월 정도 된 비숑이 베넷 미용을 하러 왔다고 했다. 보통 이렇게 어린 아가들은 처음 미용을 할 때 무섭고 겁도 많이 나서 왕왕 짖거나 입질을 한다거나 하면서 미용할 때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는 한번 짖지도 않고 너무 얌전하게 조용히 미용을 받아 ‘참 착한 녀석이네~.’ 했단다.

 

미용을 하고 있는데 손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서 봤더니, 강아지 피부에 딱지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털을 밀고 보니 드러나는 수많은 딱지들. 강아지 몸에는 말할 것도 없고, 얼굴 부분까지 긁어서 생긴 상처와 딱지들로 뒤덮여 있었다고 했다. 너무 가려워서 긁은 것 같은데, 진료가 필요할 것 같아 원장님께 여쭤보니 모낭염이었다고 했다. 이 정도로 진행됐으면 아마 집에서 진작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몰랐는지 이상하다고도 했다.

 

강아지 모낭염은 모낭에 염증이 생기는 피부병인데, 박테리아나 세균 등으로 인해 생기는 병이다. 치료는 강아지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약용샴푸나 연고, 먹는 약 등을 처방받고, 강아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해주면 나아질 수 있다. 즉,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강아지가 모낭염인 것 같고, 이미 얼굴까지 많이 번진 상황이라 애견병원 원장은 보호자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치료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안내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 견주에게서 돌아온 말.

 

“아, 바꾸고 싶다.”

 

A의 말로는

 

‘강아지가 너무 못생겨졌다.’ 

‘이거 흉이 남냐.’ (흉이 남으면 환불이나 반품이 안될 것 같으니까.)

‘못 바꾸려나…’ 

 

라고 했다고 하더라. A는 강아지 미용을 한 지 벌써 십수 년인데,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고도 했다. 저러다 어디 몰래 가서 버리거나, 아픈데 방치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말도 못하는 동물이 얼마나 가려웠을까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 견주는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병원에 다시 문의를 해왔다. 치료가 아니라 안락사를 하고 싶다고. 우리나라 법으론 강아지는 주인의 ‘소유물’이다. 강아지 안락사의 결정은 반려동물의 복지와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불치병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지속적인 통증 정도 등을 판단하고 진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 강아지는 ‘주인 소유의 물건’에 해당하니, 견주가 원하면 안락사를 진행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동물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에서는 동물 복지에 관해 엄격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유기동물이라고 해도 안락사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강아지를 키우는 견주들이 지켜야 하는 책임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하다. 현재는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에서 ‘No Kill’ 정책을 통해 동물의 안락사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는 있다. 대한민국의 법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과 도리는 다르니까. 나는 동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 도리’ 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모두 생김새가 다르고, 대부분의 경우 내가 그 생김새를 정할 수 없다. 강아지의 경우는 내가 고를 수 있지만, 강아지가 성장하면서 얼굴의 생김새나 몸의 크기 등이 달라진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꿀 수 없나.’를 고민한다는 그 견주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아무리 현행법상 소유물이라 할지라도 엄연한 생명이다. 살아 숨 쉬고, 심장이 뛰는 생명체라는 말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귀하다.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바꾸고 싶다니. 동물이 물건인가. 더이상 내 눈에 예쁘지 않고, 어디가 좀 아픈 것 같으니 안락사를 시켜야겠다니. 도대체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인가. 

 

많은 사람이 처음 반려동물을 데려올 때는 그저 예뻐서 데려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데려오기로 결정한 순간, 앞으로는 그 예쁨을 넘어서는 힘든 때도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책임을 지고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없다면 애초에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또는 책임지지도 않을 생명을 데려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강아지를 ‘바꾸고’ 싶다는 그 견주에게 동물이란 그저 집안의 액세서리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게 뭐 어떠냐, 과민반응이 아니냐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10년째 강아지 둘을 돌봐오고 있는 견주로 화가 난다. 적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생명을 보내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묻고 싶다. 누가 당신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권리를 주었느냐고. 마지막까지 꼬리를 흔들던 그 조그맣고 여린 생명에게 동의는 구했느냐고. 당신이 반대의 입장이어도 괜찮겠느냐고도 묻고 싶다. 생명을 대함에 있어 당연히 지켜야 할 사람의 도리 따위는 어디다 내다 버린 건가. 결국 그 견주는 안락사를 진행했고, 왜 인지 모르겠지만, 안락사가 진행된 뒤에 죽은 강아지를 내어 달라고 해서 몰래 치료해 입양보내려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고 했다.

 

도리는 법률처럼 어떤 강력한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지켜야 하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인간이기에,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도리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간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하고,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경시하는 일들이 사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전체적인 범죄율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잔인한 강력범죄들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물이라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별이 되어야 하는, 그런 생명을 하찮게 대하는 태도가 사라지면 좋겠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귀히 여길 줄 아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아무런 힘이 없어 구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날 A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던 그 착하고 여린 생명체를 위해서 바래본다. 이제는 아프지 않기를, 다음 생이 있다면 꼭 귀하게 오래오래 대접받는 곳에서 나기를.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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