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돌아이에 대처하는 법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8/05 [16:06]

[홍사라의 풍류가도] 돌아이에 대처하는 법

홍사라 | 입력 : 2024/08/05 [16:06]

나는 제주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방학이면 친척들이 놀러 온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되면 늘 집이 북적북적하다. 이번 방학에도 어김없이 사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에 왔다.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물색해서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낸다. 이번 주 화요일에는 어느 목장엘 갔다. 여러 동물도 있고, 예쁘게 사진 찍을 곳도 많고, 먹이 주기체험이나 송아지에게 우유 먹이기 체험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그날은 무척 더운 날이었다. 근래 겪어본 날 중에 손에 꼽을 만큼 더웠다. 밖에 서 있으면 살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날씨였는데도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목장풍경이 아기자기하고 예뻐 야외에서 사진도 많이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더워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실내로 일단 들어가야겠다 싶어 목장 내에 있는 카페로 달려갔다. 들어가 보니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로 가득했다. 밖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실내로 몰려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넓지 않은 공간에 테이블이 열 몇 개 남짓하게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곧 일어날 것 같은 테이블에 서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한 20분 정도 지났나…. 내가 기다리던 자리에 앉아있던 가족이 일어났다. 나는 여기 자리가 났다며 가족을 불렀고, 의자가 모자라 옆에 빈 의자를 끌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고성.

 

  © 홍사라


“아니, 여기 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으응???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웬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키가 작고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안경 쓴 남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그때부터 쏟아진 말들은 이랬다.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니 이 여자가 나랑 눈이 몇 번이나 마주쳤는데(손가락질하면서) 지금 모른 척하네??!!”

“내가 먼전데 어딜 자연스럽게 앉으려고 해?”

 

하아-. 방언 터지듯 하도 큰소리로 악을 써대며 귀까지 벌게져서 소리를 질러대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랑 눈이 마주쳤었다고요?”하고 반문하니 그렇단다. 멀찌감치 서 있는 마누라와 딸내미(한 너덧 살 정도 되어 보였다)에게 SOS라도 청하듯, “내가 먼저 여기 서있었지??” 하고 큰 소리로 물으니 그 마누라는 “그렇지~~그럼~~”이란다. 부창부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가까지 있지 않고 멀리 서 있었으니 그녀 또한 큰 소리로 대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온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뒤로도 쉴 새 없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예의나 배려는 밥 말아 먹은 건가 싶은 태도였다.

 

정확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첫 번째로는 내가 그 테이블로 걸어가서 ‘아, 여기서 기다려야지.’ 할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앉아서 쉬고 있는 가족들을 재촉하는 모양새는 만들기 싫어서 한걸음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나랑 눈이 마주쳤다고 했는데, 나는 기다리는 동안 근처에 있는 누구랑도 눈이 마주친 적이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얼른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낄까 봐 일부러 창문 밖을 바라보며 경치만 보고 있었으니까. 가끔 우리 조카들이 잘 있나 둘러보는 게 다였다. 마지막으로 앉으려던 자리가 비워졌으니 자연스레 우리 가족이 앉으려고 했던 것은 맞다. 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눈알을 빙빙 굴려 가며 악을 써대는데 하는 말들이 너무 유치해서 속으로는 ‘저 사람 초딩인가’ 했다. 큰소리가 나니 주변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우리 조카들도 뛰어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나이가 많이 어렸던 아이들은 무섭다고 부모에게 고개를 파묻기도 했다) 이쯤 되니 사촌 언니가 ‘00야, 다른 데 가자.’라고 눈으로 신호를 주더라. 그 사람에게 그래서 여기 앉고 싶은 거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못 하고 계속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럼 여기 앉으시라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좀 쏘아붙이고는 뒤돌아섰다.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마누라와 자식을 불러 앉히더니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나 원 참.

 

우리 가족 모두 기분이 상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고 나와 걷는데, 속에서 갑자기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아니 이게 웬 봉변이란 말인가. 멀뚱히 서 있다가 물벼락을 맞았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기분이 나았겠다 싶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누가 갑자기 나에게 이유도 없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는 할 말을 못 하고 뒤돌아선 꼴이네 하는 생각이 드니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날 그 화를 가라앉히는데 나는 다섯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무례한 사람(좋게 말해서 무례한 거지 정말 다시 생각해도 그 사람은 나에게 그냥 돌아이였다)이 나에게 시비를 걸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나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물어보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사람은 같이 쏘아붙여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의 성향이 다르니 해결책도 달랐다. 큼.

 

속은 상할 대로 상했었는데 다시 비슷한 일이 생길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그날과 같이 시비가 붙는 날이 가끔은 또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이책 저책 뒤지기 시작했다. 다시는 그날과 같이 뒤돌아서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교양있게, 우아하게, 상대에게 할 말은 정확하게 감정의 동요 없이 하고 싶었다. 욕심일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해서 책에서 한 문구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은 그들의 업보이며

당신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당신의 업보다 –웨인 다이어’

 

‘사람들이 당신을 그들의 폭풍 속으로 끌어들이게 하지 말고

그들을 당신의 평화 속으로 끌어당기세요 –페마 초드론’

 

아하!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이거구나! 했다. 시비를 거는 상대의 마음은 아마도 회오리 같을 것이다. 휘몰아치는 감정에 자신이 마치 그 감정인양 휘둘리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그럴 때 굳이 내가 그 상대의 시궁창 같은 감정으로 나를 밀어 넣을 필요가 있을까. 내 에너지를 굳이 거기에 맞추어 나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감정낭비고 시간 낭비였다. 상대가 내 앞에서 칼춤을 추더라고 내가 고요의 상태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상대의 에너지에 나를 맞추어 반응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나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날뛰는 사람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관심이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아마도 상대는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방법을 쓰는 것을 멈출지도 모른다. 그날에 대입해 생각해보자면, 나도 그렇게 무관심으로, 정확히 해야 하는 말만 간결하게 전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또는 ‘저 사람 참 못났다.’ 정도로 마무리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싸움에 맞대응하지는 않았지만 끌어 오르는 분노로 긴 시간을 소비했던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나 마누라나 똑같은 인간이네.’, ‘아니 애가 보고 있는데 저러는게 부끄럽지도 않나?.’,‘보통상황에서는 ‘미안한데 저희가 먼저 왔어요’라고 말하는데, 자기가 먼저 온 것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얼굴이 벌게져서 큰 소리를 내다니, 참 무식하다.’ ‘가다 코나 깨져라.’ 뭐 이런 생각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곱씹지 않았어도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내 손해다. 나는 수행자도 아니고 아직은 많이 모자란 사람이다 보니 다음에 같은 일을 겪어도 고요함으로 맞대응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왜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는 알게 되었으니 다름엔 좀 낫지 않을까. 나의 에너지를 ‘그런 일 따위에’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 상대가 무례하고 무식하고 예의 따위 밥 말아 먹은 짓을 하더라도 나는 평온하고 우아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돌아이가 사라진 자리는 다시 돌아이로 채워진다고 했다. 오죽하면 돌아이 보존법칙이 있다고 할까. 우리는 살면서 어디서든 돌아이에게 공격 아닌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제대로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돌아이를 만났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돌아이에게 뺏기지 말고 조금은 우아하게 대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면 소중한 나의 하루가 온통 그 돌아이로 인해 낭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처하기가 쉽지는 않아도 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일인 것 같다. 우리 모두 돌아이에게 우아하게 대처하는 그날까지, 화이팅!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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