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생각이 문제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7/18 [16:37]

[홍사라의 풍류가도] 생각이 문제

홍사라 | 입력 : 2024/07/18 [16:37]

  © 홍사라

 

얼마 전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부터 정해져 있던 일정이었다. 여행을 떠날 땐 늘 음악 몇 곡을 고르고 책을 몇 권 챙긴다. 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딘가를 떠날 때에는(그 거리가 아무리 짧다고 해도) 떠나려는 길에 어울릴 것 같거나 그 당시 나의 마음 상태에 필요한 내용의 책을 심사숙고해서 골라 가져간다. 아주 오래된 나만의 작은 의식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도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몇 곡의 노래와 두 권의 책을 챙겼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초반에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여행의 중반쯤이 되어서야 책을 펼쳐볼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래. 다 핑계다) 두 권의 책 중에 손에 잡히는 한 권을 들고 별생각 없이 넘긴 책장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생각(thoughts)과 생각하기(=사고하기, thinking)는 같은 것 같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 그냥 떠오르는 것이고, 생각하기란 떠오른 그 생각을 내가 다시 사고하는 과정이라고. 처음엔 무슨 말이지? 했었는데, 그 책을 쓴 사람도 이해가 좀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는지 다음을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궁금하다면 한번 따라 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당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연간 수입액은 얼마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30초 정도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답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보자. 그냥 떠오르는 대답이어야지 내가 벌고 싶은 금액을 계속 생각하라는 게 아니다. 떠오르는 답이 있었다면, 그 답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느껴본다. 그리고 이 과정이 끝났다면, 이번에는 그 답에 5배를 곱해서 그 숫자를 머리에 떠올려보고, 5배가 늘어난 나의 연간 수입액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지 살펴본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 질문인 ‘이상적인 연간 수입액’에 대한 대답은 빠르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답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하면서, ‘아, 너무 적게 말했나?’ 내지는 ‘ 너무 많은가? 내가 그만한 능력이 되나?’ 또는 ‘너무 욕심 많은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느껴진 감정들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는 생각(thoughts)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그 생각을 두고 내가 생각하는 것(thinking)은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나는 생각하기(thinking)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생각이 참 많은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랫동안 곱씹는다. 내 머릿속에서 오래 머무르고 나서야 사라진다. 이런 과정을 지나고 나면 뭔가 에너지가 쭉 빠진 느낌이 든다. 그것이 심해질 때면 친구에게 종종 ‘ 아, 내 뇌를 꺼내서 찬물에 담근 다음 흔들어서 깨끗이 씻으면 좋겠어. 그런 후에 다시 장착하면 얼마나 시원하겠어.’ 같은 말을 한다. 사고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는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사고하는 과정은 파괴적일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 있었던 어떤 일을 생각해봐도 그랬다. 기분 나쁜 말을 들었는데, 그 순간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생각하는 동안이 더 속상하고 마음을 힘들게 했다.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뭔가 좋은 해결책이 생기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분은 당연히 좋지 못하다. 늪에 빠진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실제로 늪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면 더 깊이 빠지기 때문에 그저 부력에 몸을 맡기고 떠오르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영 반대로 해온 것 같다.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무언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양새가 머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는 ‘어떤 사람’ 또는 ‘어떤 환경’이 되려고 계속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잘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에게 다 좋은 방향이 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나친 생각하기(thinking)를 멈추고 떠오르는 생각(thoughts)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내가 내 머릿속마저 복작거리며 살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식이’님의 노래 중에 ‘나는 반딧불’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누가 내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어리고 어렸던 시절, 누구나 내가 세상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다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 여정을 지나오면서 정말 생각이란 걸 많이 했던 것 같다. 도움이 되는 생각들도 있었지만, 그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그때 느꼈던 뭔가 슬프고 그립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 괴리감, 그때의 내 마음이 직설적으로 노래에 쓰여있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나는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매일매일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그 스쳐 가는 생각을 잡아 또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을 만들 테지만,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문득문득 그렇게 또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생각을 멈추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 감정이나 생각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바로 그것. 그것에 집중해보는 순간순간을 보내면 좋겠다. 시간이 난다면 ‘중식이’님의 나는 반딧불을 들어봐도 좋고. 우리는 모두 빛나는 벌레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니 딱 그만큼만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자. 내 마음의 행복을 위해.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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