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헤어질 시간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5/17 [14:19]

[홍사라의 풍류가도] 헤어질 시간

홍사라 | 입력 : 2024/05/17 [14:19]

  © 홍사라

 

반려인구가 1500만이란다. 우리나라 사람들 4명 중 1명꼴로 강아지를 키우는 집사인 셈이다. 

 

나도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멍집사’이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아주 많고, 강아지와 같이 카페를 간다던가, 밥을 먹는 것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올해 9살이 되었다. 강아지의 평균수명은 종마다 다르고, 개체마다 다르지만, 9살이라면 이제는 노견에 속하는 나이가 되었다. 실제로도 작년에 건강검진을 해보니 노환으로 인한 질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직 아기인 줄 아는 9살 하얀 스피츠 아지는 한 번도 트러블이 없었던 피부에 피지낭종이나 사마귀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목에 디스크 증상도 가끔 보인다. 귀여운 말썽쟁이 9살 빠삐용 아톰이는 한 두해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질환이 생겨서 귀가 자주 아프고, 결석도 생겨서 늘 관리해야 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화로 인해 생기는 증상들이 느끼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동갑내기인 이 두 아이가 얼마나 더 나랑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덜컥 겁이 난다. 예전에 10년 가까이 키우던 강아지를 심장병으로 보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년간 앓았던 심장병이 너무 힘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나의 착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은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던 그런 눈빛. 축구 때문에 떠들썩했던 어느 날, 새벽에 호흡곤란으로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그렇게 떠나갔다. 우리 집 식구들은 그 친구를 떠나보내고 한참 동안 힘들어했다. 한동안은 눈을 감으면 강아지가 내는 탁탁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현관문을 열어도 뛰어나오는 녀석이 없어 상실로 인한 공허함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강아지를 보내고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금 나는 또 강아지 두 마리랑 같이 살고 있다.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냥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강아지는 생일선물이라며 그 당시 남자친구가 들이밀어 나와 같이 살게 되었고, 두 번째 강아지는 닭장 같은 강아지 쇼케이스의 제일 위 칸,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던, 머리털이 다 빠져 있고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 작고 볼품없는 생명체가 며칠 동안 눈에 밟혀 데려왔다. 그렇게 두 마리와 9년째 같이 살고 있다. (머리털도 예쁘게 자라고 지금은 둘 다 너무 멋진 강아지가 되었다.)

 

좋은 시간, 힘들었던 시간, 나의 모든 대소사를 함께 해준 강아지들이라 나에겐 무척 소중하다. 그러니 그 강아지들이 떠나갈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시간과 달리 강아지의 시간은 몇 배나 빨리 지나간다. 9살이라도 사람 나이로 치면 벌써 환갑이다. 그러니 남는 사람이 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직 이별을 생각하기에는 이르다 할지도 모르지만, 헤어짐이란 게 예고 없이 오는 것이니까. 이제 주변에서 헤어질 날들을 대비해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 준비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별이라는 게 준비한다고 되는 일이던가.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막상 그날이 다가오면 다 소용없던데.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타닥타닥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경쾌한 발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싶다. 

 

 모 동물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처음 입양한 주인이 그 개를 죽을 때까지 키우는 경우는 단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별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지인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그 친구도 다견다묘가정의 집사이다보니 강아지를 키운 경험도 오래되었고, 보낸 경험도 많다. 내가 지금의 강아지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더니 그래도 언니는 12% 안에 든다며, 언니 집 아이들은 평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인이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언니랑 같이하다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할 거라고. 그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아이들에게 종종 짜증을 낸다. 말을 안 듣는다고, 일해야 하는데 자꾸 놀아달라고 귀찮게 한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카들이 나에게 이모는 강아지들한테 맨날 못되게 말한다고 그러더라. 생각해보니 내가 강아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기다려’, ‘안돼’ 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되고, 자기전이 되면 맨날 미안해지고 후회가 된다. 그래서 자기 전에 나의 루틴이 이미 자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막상 우리 집 강아지들은 자는 중이라 귀찮아서 귀를 펄럭거리지만 그래도 꼭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한다. 

 

개통령인 강형욱이 운영하는 보듬tv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을 떠나보낸 견주들을 모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하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댓글을 보면 그 영상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는 말이 많던데, 나도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니 울컥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그 영상을 보니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유난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이별은 주어진 시간이 다하고 나면 기어이 오고야 만다. 미리미리 준비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앞으로 같이 지구에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나의 모든 시간을 함께해주는 착한 나의 반려견들에게, 조금 더 함께 산책하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덜 짜증 내고, 조금 덜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나도 꼭 듣고 싶다. 그리 잘하는 반려인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견주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 

 

‘너와 함께여서 행복했어.’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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