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대리수술 (의사→의사) ‘구속’ 한국의 대리수술 (의사→영업사원) ‘벌금형’
의료 현장에서 ‘대리 수술’이라는 아찔한 단어는 더 이상 생소한 사건의 키워드가 아니다.
최근 국립의료원 의사가 동료의 수술 기록을 빼돌렸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의사는 앞서 의료기기 판매업체 영업사원에게 수술 보조행위를 시키다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었다.
일선 병원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병원은 대리수술 논란으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심각한 비위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검찰의 사법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당 병원은 의료기기 유통업체의 영업직원들을 병원에 상주시켜 수술 보조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구속되거나 강력한 형사처벌을 받은 의사는 없었다. 지난 2017년 한 척추병원의 대리수술 사건 당시에도 의사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아닌 의료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비 의료진만 ‘사기죄’로 기소됐을 뿐이다.
때문에 대리수술에 대한 혐의를 기존 의료법 위반 혐의가 아닌 상대적으로 처벌이 무거운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특법) 위반으로 적용해 경각심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리수술을 ‘살인’에 준하는 강력한 범죄로 보고 있다. 수술 중인 환자의 경우 외부의 자극에 무방비 상태로 어떠한 상황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의사가 이해당사자의 동의 없이 약속과 다른 시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약 30년 전부터 대리수술을 중대 상해죄로 규정했고, 1983년 뉴저지 대법원은 환자의 알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환자 동의 없이 행하는 수술은 폭행이며 ‘의료’가 아닌 사기, 상해, 살인미수”라고 판시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9년 외과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환자의 동의 없이 척추 수술을 맡겨 해당 의사는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일본 역시 지난 2018년 한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환자의 동의 없이 간암 수술을 맡겨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독일,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도 대리 수술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법을 적용하고 있다.
대리수술이 의료법 위반(?) ‘범죄혐의 보특법 적용 강화해야’ 목소리↑ 법원 “관행이라는 이유로 반복하는 것은 책임 회피” 일침
시민사회에서는 일부 의사들의 대리수술이 적발되더라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꼽아 의료법이 아닌 상대적으로 처벌이 높은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특법)으로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대리 수술 행위가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데, 대다수 의사들이 중대한 상해 등의 피해를 입히지 않은 경우 면허취소나 의료기관 폐쇄 등의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징역형을 피해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대리수술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앞서 간호조무사에 대리 수술을 맡긴 광주의 한 척추병원 의사들이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에게 수술 행위 중 하나인 피부봉합을 맡긴 것은 위험성 여부를 떠나 엄연히 법 위반 사안”이라며 “영리 목적으로 간호조무사와 의사가 함께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사실도 유죄”라고 말했다.
이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더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이유는 생명과 의사를 존중하는 가치가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지 의사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며 “관행이라는 이유로 반복하는 잘못을 개선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되고 기본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모두 법원에서 “의사의 지시로 간호조무사들이 피부 봉합수술을 한 것은 사실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보특법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화저널21 신경호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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