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와 생활한 지 어느덧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시간 참 빠르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우리 집 뒷마당 귤밭에 귤 수확이 한창이어서, 나무마다 귤이 가득가득했는데, 어느새 귤은 다 따고 없고, 나뭇잎만 가득했던 귤나무에 요즘 꽃이 피고 있다. 그새 계절이 바뀌었다.
제주에 내려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한 3년 전쯤이다. 그때 묵었던 동네의 분위기와 아침마다 했던 산책이 너무 좋아서, 가족들 모두 제주에 내려와 1년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어쩌다 보니 정말 제주에 내려오게 되었고, 그때의 꿈 같은 생각이 실제가 되었다. 설레고 기뻤다. 처음에는.
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생각한 제주와 실제 제주에는 간극이 있었다. 우선 나는 제주에 이렇게 벌레가 많은지 몰랐다. 자연환경이 풍부한 곳이니 ‘벌레가 있겠지...’ 생각은 했지만, 내 상상력이 부족했던 걸까. 와서 보니, 종류의 다양성도 어마어마하지만, 크기도 크고 수도 많았다. 지금 사는 집에 처음 오던 날, 집 앞마당을 걸어들어오는데, 바닥은 밝은 회색 타일인데 뭔가 점점이 박혀 있는 듯 보이는 거다. 타일 무늬겠거니 하고 걸어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 무늬들이 살짝살짝 움직이고 있었다. 착각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그게 다 벌레였다.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이 생겼는데, 발이 무지 많고, 통통하고 까맣고 길쭉했다. 똑같이 생긴 벌레들이 바닥에서 진짜 한 백 마리쯤 기어 다니고 있었던 거다. 와~ 소름이, 진짜 머리카락도 곤두서는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노래기라는 벌레였다. 눌러 죽이면 냄새가 고약해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뿐인가. 한번은 일명 바선생(바퀴벌레)를 만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저게 무슨 벌레지 했다. 사이즈가 성인 엄지손가락만큼 길고, 날개도 있고, 빠르기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선생님의 한 3~4배는 되는 크기인 것 같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갔을 때, 그 유명한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옆에 뭐가 휙 날아가길래 ‘나빈가….’하고 쳐다봤다가 바퀴벌레여서 깜짝 놀라 소리 지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생전 처음 보는 크기에 깜짝 놀랐었는데, 그날 봤던 그 바퀴를 여기서 또 볼 줄이야.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던 나는, 퇴치방법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해봤다. 그런데 제주에 반해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신기루 같은 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벌레 때문에 못 살겠어요.’ 였다. 이제까지 어떻게 한 번도 이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제주는 온도가 높고 습한 환경 때문에 원래 벌레가 많단다. 엄청 커다란 바퀴벌레인 제주도 먹바퀴(이름부터 무섭다), 첫날 만난 노래기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봤던 돈벌레, 거미(색상과 통통함, 크기가 다르다.) 무섭게 생긴 지네, 어마어마한 양의 진드기, 이름도 모를 온갖 벌레들의 천국이라고 했다. 겨울에는 좀 잠잠하다가, 조금 따뜻해지려고 하면 출몰하고, 여름 가을에는 창궐한다고 표현하더라. 아. 몰랐다.
처음 몇 주간은 진짜 노이로제 걸린 사람처럼 벽이랑 바닥만 봤던 것 같다. 집에 강아지도 있는데 물리거나 먹으면 어쩌지 걱정도 되고, 벌레라면 질색인 내가 혹시나 마주할 때를 대비해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환기도 오래 하지 말라는 세스코 아저씨 말대로 짧은 환기를 하면서도 창틀을 주시했다. 그 사이로 다 기어들어 온다고 해서. 그 커다란 바퀴벌레나 노래기가 어떻게 집에 들어올 수 있는지 세스코 아저씨한테 설명을 듣고 나니 더 절망적이었다. 아저씨 말은 이랬다. “걔들이 엄청 커 보이죠. 그런데요, 걔네가 옆으로 쫙 접으면 얇아져서 웬만한 창틀로도 다 들어와요.” 으아아아악!! 아저씨가 바퀴벌레에 빙의해 설명해준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뿐인가. 제주는 기후가 1년 내내 습하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제습기 없이는 못살 정도다. 빨래를 해서 건조기에 돌려도 꺼내면 눅눅해진다. 제습기를 틀면 습도가 60은 기본이다. 나의 정보통 세스코 아저씨가 그러는데 여름 되면 정말 장난 아니라고 했다. 하루종일 제습기를 돌려도 습할 거라고. 내가 가진 제습기는 서울 살 때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이 모셔만 두던 적당한 크기의 제습기인데, 저걸로 여름을 버티는 것은 택도 없을 거라고 했다. 지금 가진 제습기 몇 개 더 사야 집이 커버가 될 거라나. 아. 정말. 게다가 여름에는 옷장을 꽉꽉 채워두거나 문을 닫아두면 곰팡이가 생기기 때문에 습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육지라도 몇 주 다녀오게 되면 야외에 주차해둔 차 안에도 곰팡이가 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고. 헉. 차에 곰팡이가 핀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얼마 전에 동생이 물었다. “언니네 집은 요즘 빨래하면 보송보송한 경우가 있어?” 내 대답, “아니.” 어휴. 이게 무슨 일인가.
벌레와 습도 말고도 제주는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다. 물가도 비싸고, 시내가 아니고서야 주유소를 찾아가는 데도 오래 걸려서, 기름이 한 칸 남으면 주유소에 찾다가 차가 설 수 있으니 미리미리 기름을 넣어주어야 한다. 강아지 산책도 자유로운 동네 개들 때문에 힘들고, 여행 올 때는 그렇게 날씨가 좋더니만, 실제 제주의 날씨는 맑은 날이 그리 많지 않았고, 하루 동안 날씨가 여러 번 바뀔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눈이라도 오면 제설이 안 돼서 차를 몰기에 위험해 집에 갇혀있기 일쑤고, 그 유명한 제주도 바람은 정말, 말해 뭐하겠나.
시골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시골에 적응 못 하는 우리 개들에 이어 나도 도시 사람이었구나 하고 있다. 불평불만을 가득 털어놓던 어느 날, 지인이 이런 글을 보내왔다. 제주는 원래 그렇다고. 그게 제주라고. 원래도 그렇게 있었는데, 네가 다른 모습으로 제주를 생각하고 제주가 그럴 거라고 상상하고는, 막상 제주가 그렇지 않다고 불평하면 어쩌냐고. 원래 그렇게 생긴 앤데 네가 오해를 한 거라고. 처음에 저 말을 들었을 때는 기분도 나쁘고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뭘 알고 하는 말인가 싶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자꾸 곱씹게 되더라. 불편함에 짜증이 날 때마다 저 말이 같이 떠올랐다. 그렇지. 내가 내 맘대로 제주를 생각한 거지. ‘제주는 이럴 거야.’ 하고 생각하고는 그렇지 않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일 수 있겠구나. 여전히 불편하지만, ‘제주는 원래 이랬으니 그걸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하는 꽤 성숙한 마음도 가끔 생기고.
상황이나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맘대로 ‘이건 이럴 거야’, ‘이 사람은 이럴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실망한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은가. 본 모습과 상관없이 나 좋을 대로 규정짓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습성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가 가진 본질은 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를 떠올리며 했던 내 생각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실제는 그와 다를 수 있는데, 나는 내 환상과 다르다고 불평하는 꼴이었던 거다. 그래서, 여전히 불편한 구석이 많지만 좀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한번 제주를 제대로 보려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관심 가지고 들여다보는 노력. 얼마간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지만, 안 좋은 면만 보다가 가면 나중에 엄청 후회할 것 같으니까. 돌아갔을 때 ‘아, 이거 해볼걸.’ 하고 후회할 것 같은 일들의 리스트를 적어가며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곳곳에 숨겨진 동네 이야기도 찾아보고. 제대로 들여다보며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나만의 노력이다. 때때로 또 불편하다며 불평을 늘어놓겠지만, 이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어쩌면 내가 상상한 환상 속의 제주 말고, 진짜 제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외지인으로 바라봤던 그저 좋은 제주 말고, 내가 찾은 진짜 제주의 멋을 언젠가 다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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