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거정절빈(擧鼎絶臏)

송금호 | 기사입력 2024/04/29 [09:12]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거정절빈(擧鼎絶臏)

송금호 | 입력 : 2024/04/29 [09:12]

솥 들기 시합하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죽었다는 말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잘못된 경우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27대 군주인 무왕(武王)은 부왕인 혜문왕이 붕어(崩御)하자 왕위에 오른 뒤, 부왕의 신하들을 중용하면서 안정적인 왕권을 확립했다. 또한 중국 최초로 승상 제도를 도입한 인물이면서, 진나라의 중흥을 도모했다. 그는 키가 8척이고 허리둘레도 굵어 힘이 장사였으며, 힘 쎈 장사를 좋아했다.

 

재위(在位) 4년째인 기원전 307년 8월 무왕은 명색이 천자국 주(周)나라의 도읍인 낙양을 방문했다. 그는 천자를 상징하는 청동 솥인 구정(九鼎)을 보고는 당대의 유명한 역사(力士)들과 솥 들기 내기를 제안했다. 그러자 임비, 오획 등은 젊고 혈기왕성(血氣旺盛)한 무왕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알았기에 “저희는 힘이 약해 감히 솥을 들 엄두가 안 납니다.”라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힘만 장사였던 무식한 맹열(孟說)은 “저 사람들이 못 드는 것을 제가 들어보겠습니다.”라면서 솥을 들어버렸다. 눈치 없는 짓이었다. 이에 경쟁심이 발동한 무왕은 “나는 솥을 들어서 걸어보겠다.”라고 하면서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청동으로 만든 솥이 어찌나 무거웠던지 구정(九鼎)을 든 무왕의 눈에서는 피가 나왔고, 한 걸음을 떼자마자 힘이 빠져서 오른발 정강이로 구정을 떨어뜨렸다. 정강이가 부러진 무왕은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붕어했다.

 

23세의 나이에 혈기와 힘만 믿고서 객기를 부리다가 그만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이때부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힘만 자랑하다 곤욕을 치르거나 패배를 당하는 사람이나 그런 경우를 일컬을 때 거정절빈(擧鼎絶臏)이라는 말을 쓴다.

 

개인이든 국가 지도자 든 합리적인 판단과 실행을 해야지만 실패할 확률이 낮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과 부(富)와 권력만 믿고 날뛰고 설치다가는 큰코다칠 일이다.

 

의사 부족이라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가 벽에 부딪히면서 의료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수술이 시급한 환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여기저기서 치료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국민이 늘어만 가고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배수진을 펼치며 버티고 있다면서 의사들만 비난하기에는 이번 정부의 추진이 너무 졸속이었고 덤벙거렸다.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한 의료 개혁은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사전에 주도면밀한 검토와 토의, 의견의 취합이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정부는 권력의 속성인 추진력만 앞세워 밀어붙였으니 뻔한 결과가 아닌가. 정부의 막무가내식 추진 때문에 그나마 의사 증원 필요성에 대한 당위성까지 좀을 먹어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권력만 갖고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과 자만이 낳은 결과이니, 자신의 힘만 믿고 수백 근(斤)이나 나가는 청동 솥을 들고서 걸어보겠다는 진나라 무왕의 객기나 별로 다름이 없어 보인다.

 

무왕의 성정(性情)을 헤아리지 못하고 솥 들기 내기를 함께한 맹열은 어찌 되었을까. 무왕의 뒤를 이은 진 소양왕은 ‘왕의 혈기를 부추겨서 죽게 했다.’는 죄목으로 맹열의 사지를 찢어서 죽이고, 삼족(三族)을 멸해버렸다. 반면 무왕의 객기를 말리려 한 임비(任鄙)는 한중태수에 임명했다.

 

힘자랑하고 싶어 하는 왕의 안위(安危)를 비롯해 합리적 결정 및 행동을 한 장사 임비, 왕의 심기(心氣)만을 생각하다 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면하지 못한 멍청한 장사 맹열의 이야기가 담긴 거정절빈의 후담(後談)도 지금의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꼭 알아두고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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