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송금호 | 기사입력 2024/03/20 [13:29]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송금호 | 입력 : 2024/03/20 [13:29]

봄이 와도 봄처럼 느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어 좋은 일도 즐겁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고대에는 4대 미녀가 있다. 출생순서로 보면, 춘추전국시대 때 월(越)나라의 미녀 서시(西施), 한나라(西漢) 때의 왕소군(王昭君),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포(呂布)의 부인이 된 초선(貂蟬), 그리고 당나라 현종의 첩인 양귀비(楊貴妃)를 든다. 이 중 초선은 소설 속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說)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항우의 부인 우희(虞姬)를 4대 미녀에 넣기도 한다.

 

미인 박복(薄福)이라 했던가. 이들은 청초하고 수려한 외모로 인해 한때는 권력자의 사랑을 받았거나 부귀영화를 다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화려함의 그늘에서 남모르는 슬픈 삶을 영위하기도 했다. 이해관계를 앞세운 권력과 세태(世態)는 미인(美人)을 활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일까.

 

이들 중 왕소군은 참으로 비련(悲戀)의 여인이다. 중국 한나라 효원제(孝元帝)의 궁녀인 그녀는 황제의 시중을 드는 기회를 잡지 못해 늘 외롭게 지냈다. 궁녀가 많아서 화공(畫工)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황제의 밤 시중을 드는 여인을 매양 결정했었는데, 천하일색(天下一色)이었지만 가난한 집 딸인 왕소군은 돈이 없어서 뇌물을 주지 못했다. 화공들은 돈을 준 궁녀들은 예쁘게 그려서 황제의 간택을 받도록 한 반면, 돈을 주지 못한 왕소군은 오히려 밉상으로 그렸다.

 

한나라는 당시 강성했던 북쪽의 흉노제국과 화친정책을 펴면서 흉노의 선우(황제)에게 한나라 궁녀를 시집보내도록 되어있었는데, 효원제는 역시 궁녀들의 그림만 보고는 왕소군을 선택했다. 흉노 선우에게 시집을 보내는 날 효원제는 깜짝 놀랐다. 그림으로는 별로였던 왕소군이 실제로는 엄청난 미인이었던 것이다. 아차차 싶었지만 이미 흉노의 선우와 약조를 했기에 어쩔 수없이 쓰린 마음을 안고 시집을 보내야만 했다. 뇌물을 주지 않았다 해서 왕소군을 제대로 그리지 않은 화공들이 황제에 의해 다들 참수(斬首)를 당한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어쨌든 왕소군은 흉노의 왕비가 되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이러한 사연과 함께 이국땅에서 외로이 살다간 왕소군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와 소설로 많이 엮어졌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지은 소군원삼수(昭君怨三首)라는 시(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허리끈 스스로 느슨해지니 허리 품이 날씬해서가 아니라네.(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제목의 소군(昭君)은 왕소군을 가리킨다. 북방 오랑캐 땅에도 봄이 왔건만 꽃과 푸름이 없어서 진정 봄 같지 않은데, 기실 쓸쓸하고 고독한 마음이어서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마음을 읊은 것이다. 또한 허리끈이 느슨해지는 것이 날씬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는 마음이 병이 되고, 삶이 즐겁지 않아 몸을 수척하게 한 것이어서라는 것을 은유했다.

 

여기서부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전해졌으니, 따뜻한 봄을 그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시리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할 때 인용되고 있는 글이다.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철이 다가왔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로 민주주의의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으니 응당 향기가 나야할진대 어찌 된 일인지 거짓과 비난과 오만과 선동에 의한 악취(惡臭)가 코를 찌른다.

 

야당의 공천 잡음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오만(傲慢)이 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행정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포착되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용산의 한 수석비서관은 언론인을 향한 협박도 서슴지 않으니 참으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는 어떤가.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총선이 끝난 뒤인 올 하반기를 크게 걱정한다. 총선 후로 미뤄진 부동산PF 연장이 끝나면서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일반 제조업, 외식업을 비롯한 서비스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기침체의 징후가 뚜렷하다. 대기업들은 투자는 고사하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금 보유에 열을 올린 지 오래다.

 

이러니 지금 봄이라는 계절이 왔고,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꽃이 피는 선거철이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시리고, 몸은 추워서 떨고 있다. 무엇보다도 희망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정권을 쥔 여당은 실현가능한 정책이나 공약은 별로 없이 유권자들의 선심을 사기 위한 총선용 행보를 강행하고 있고, 야당은 민주대연합 전선이라는 대열이 흐트러질 정도로 공천 후유증으로 인한 내홍을 겪고 있다.

 

흉노제국 황제의 부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같았지만, 타향살이에 마음을 둘 곳이 없던 왕소군은 항상 외롭고 쓸쓸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희망이 별로 없어서 불안하고 낙심(落心)이다.

 

그래서 올해는 특히 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것 같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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