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동문황견(東門黃犬)

송금호 | 기사입력 2024/03/14 [10:49]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동문황견(東門黃犬)

송금호 | 입력 : 2024/03/14 [10:49]

권력과 출세만을 좇다가 허망한 결과가 온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진(秦)나라의 아사(李斯)는 法家(법가)의 뛰어난 정치가로 楚(초)나라 출신이었지만 여불위의 천거로 秦始皇(진시황)에 중용되었다.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중앙집권제인 군현제와 도량형 완비에 큰 공을 세웠고, 천하통일 이전에 시황제가 타국 인재를 배제할 때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막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그는 시황제가 만나고 싶어 하던 동문(同門) 韓非子(한비자)를 모함하여 자진하게 하고, 사상탄압으로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주도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씻을 수 없는 큰 과오는 승상시절 진시황이 죽자 간신인 환관 조고(趙高)가 조서(詔書)를 위조해서 장남인 부소(扶蘇) 대신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는 간계를 막지 못하고 협력했던 일이다. 분서갱유를 반대하다 부황(父皇)의 미움을 사서 변경에 나가있던 부소는 결국 자결했다.

 

그는 초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기득권세력과의 경쟁에서 이겨 승상이 되었지만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지 위해 간신(奸臣)과 결탁한 것이다.

 

이후 이사는 무능한 황제에게 간언을 했지만 오히려 미움을 받았고, 환관 조고의 모함으로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결국에는 억울한 누명으로 허리가 잘리는 요참(腰斬)형과 함께 아들을 비롯해서 삼족(三族)이 멸문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수도 함양(咸陽)의 저자거리 형장으로 둘째 아들과 끌려가던 이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읊조렸다. ‘너와 함께 누렁이를 끌고 고향 상채마을 동문으로 나가 토끼사냥을 하려 했었다’ (復牽黃犬俱出/부견황견구출, 上蔡東門逐狡兔/상채동문축교토)

 

그는 죽음 앞에서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탄식했으니 모든 부귀영화가 한낱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은퇴 뒤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과 토끼사냥을 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꿈을 갖고는 있었지만 권력과 부귀영화에 취해 있던 이사는 끝내 멸문지화를 당해버리고 만 것이다.

 

여기서 동문황견(東門黃犬)이라는 말이 나왔으며, 자신의 능력과 기득권만 믿고 영원히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만(自滿)과 오만(傲慢)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망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고사성어다.

 

채 상병 사건의 형사적 혐의를 지고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던 전직 국방장관이 도망치듯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를 비호하거나 돌봐주는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오만과 자만의 군상(群像)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아님 크나큰 곡절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은 절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하물며 임기가 정해진 민주주의국가에서의 최고 권력이란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짧은 것이다. 추풍과이(秋風過耳)라는 말도 있다. ‘가을바람이 귀를 스치다’는 뜻으로 덧없이 흐르는 시간과 세월을 이야기할 때 쓰기도 한다.

 

한마디 더 붙이면, 요즘 총선을 앞두고 의회권력과 정당권력을 향해서 달리는 수많은 부나비들도 권력의 무상함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내 이익과 권력만 좇다가는 어느덧 세월과 권력의 무상함이 뼈에 사무칠지도 모를 일이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