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잠을 잘 잘 자는 아이였다. 어디든 머리만 닿으면 금방 잠이 들었다. 차를 타면 몇 분 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서 도착할 때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했다. 시험 기간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려고 커피를 몇 잔씩이나 마셔도 밤을 새우기는커녕 꿀잠을 잤다. 여행을 가서도, 아무리 낯선 환경에서도 잘만 잔다. 잠자는 일은 내게 무척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알 리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인생의 쓴맛을 알아서인지, 그저 운동량이 적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최근에 먹기 시작한 약 때문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요 며칠 신경 쓸 게 많았나보다 했다.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해도 몇 시간 늦게 자는 것뿐이니, 한두 시간 늦게 자는 거야 뭐, 크게 문제 될 것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뒤척이다 늦게 잠드는 일이 점점 빈번해지고, 잠든 지 한두 시간이 지나면 잠에서 깨어나고는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생겼다. 다시 자려고 노력해봐도 정신이 너무나 말똥말똥해 쉽게 다시 잠이 들 수가 없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활패턴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래 오늘부터는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거야, 규칙적인 생활을 하겠어.’ 다짐을 하고 10시 반 정도에 잠잘 준비를 마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막상 누우니 잠이 오질 않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면 우선은 일찍 자야 하는데, 결국 시도 첫날, 나는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잠을 잘 못 자는데 특정한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가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잠 못 드는 날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매체에서 ‘잠을 못 자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 사람들이 불면증은 매우 고통스러운 질병이라고 하던데, 내가 종종 그 상황에 놓이게 되니 그제야 불면의 증상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잠이 보약’이라는 하셨던 말의 진정한 의미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잠이 부족한 날은 괜히 짜증이 나고, 예민해진다. 피곤함도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며칠 연속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에는,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머리도 잘 돌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날 선 사람이 되어있었다. 질 좋은 잠은 건강에 있어 필수 요소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더라. 그래서 더 잘 자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쉽지는 않았다. 잠을 잘 자보려고 잠이 잘 온다는 방법을 찾아,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적용해 보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불면증이라는 단어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잠드는 것’ 때문에 피곤해진 뒤로는 불면증에 좋은 향초, 베개, 안대 같은 것들도 주문해보고, 잠 잘 자는 법을 찾느라 핸드폰을 들고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다 써봤지만 결국 잠들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 보니 ‘ 아, 그냥 자는 걸 포기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마음에 자는 건 그만두고 눈이나 감고 있자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드는 걸 포기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잠을 자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그저 눈을 감고 잡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두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좀 늦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온갖 노력을 해도 안 되더니 잠을 자는 노력을 그만두니 잠이 들다니, 아이러니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잠이 너무너무 안 오는 날에는 ‘그냥 눈이나 감고 있지 뭐’라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낸다. 어느 책에서 보니 그냥 눈만 감고 있어도 뇌는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도 하더라.
이제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자려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드는 노력이 지겨워질 때쯤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로 나간다. 그리고는 같이 사는 강아지 두 마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주인이야 자든가 말든가 배를 보이고 잠꼬대를 하며 꿀잠을 주무시는 두 분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진다. 잠든 강아지들 배를 몇 번 살짝 쓰다듬으며,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는 다시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그리곤 눈을 감고 그저 휴식을 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해 보았던 다른 많은 방법에 비해 성공률이 높았다.
며칠 전에도 잠이 안 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노력은 하되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 무슨 일이든 너무 애쓰면 오히려 성사되기 어렵다던데, 잠도 그런 것 같다. 불면증을 겪다 보니 잠자는 방법에 몰두하며 너무 애쓴 건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과 노력이 나를 각성상태에 놓아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고. 마음이 앞선 노력은 잠을 자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나의 노력들이 나를 더 잠들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잠을 자야 한다는 노력을 멈추고 나니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줄어들었다.
비록 인구의 1/3이 한 번쯤은 겪는다는 불면증을 겪은 것이지만, 이번 일로 느낀 바가 있다. 잠도, 일도, 사람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려고 너무 애쓰며 아등바등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노력을 다했다면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그렇게 놓아두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젠 하늘에 맡긴다는 말처럼 그렇게 그냥 맡겨보는 것.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이 작은 진리가 어쩌면 가장 좋은 모범 답안일지도 모를 일이다. 잠이든, 얻고 싶은 무엇이든.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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