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작품이든 시간이 지나봐야 '세월'이 뭔지를 안다. 창의와 도전, 원숙과 완성, 관객들이 정확한 리뷰는 할 수 없다 해도, 들리는 음악인지, 마음을 파고드는지, 실험과 완성,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가 된다. 아창제 15년, 우여곡절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너라 순탄치 않은 세월이었다.이제는 알았다. 공모가 능사가 아니고 위촉이 전부도 아니다. 형식과 절차를 넘어 상호 배합의 균형점을 찾기위한 진정성이 중요하다. 눈치와 감을 익히는 장소의 제공이다. 젊음은 창의적 발상을, 경험은 연륜의 보따리를 푼다. 6일 저녁, 아창제는 창작이 어디로 가야할지의 방향을 드러냈다.
국립심포니는 사운드도 안정되고 한 격(格) 살아나 보였다. 한복을 입지 않았어도 정체성이 분명한 지휘자 한 사람이 태어났다. 정치용, 해방 이후 첫 결실이다. 오늘의 K콘텐츠 흐름 상황을 보면 국립심포니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깃발이 선다. 그러니까 지난해 베를린 갔을 때처럼 하지 말고 주 식단을 우리 것으로 꾸미는 체질 개선이다. 창작을 선도하는 국가 대표 오케스트라가 국립이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가 원본 레퍼토리 갖고 문지방이 닳토록 드나드는 마당에 잘못하면 대표가 아니라 3류로 비춰질 수 있다. 정체성 위기가 오는 것이, 가뜩이나 명품 구매 심리 충동이 강한 백성들이요, 몇 분 몇 초에 팔렸다는 기획자들의 마케팅앞에 대책이 필요하다.
때문에 아창제와 국립심포니가 따로 국밥이어선 안된다. 동고동락하며 시장 창출을 위해서 시너지를 내지 않으면 유럽 독점이 되고 만다. 국립이 드보르작 신세계나 베토벤 합창으로 한 시대를 관통했지만 앞으로 갈수록 썰렁해진다. 작곡가 전용의 텃밭 오케스트라가 그래서 필요하다. 그래야 작품이 나온다. 때마침 문체부가 K 아츠 시대를 열겠다며 포문에 불을 뿜기 시작했다. 뭘 싸들고 나갈 것인가? 아창제 창고에서만 찾지말고 눈을 씻고 찾아야 하고 삼고초려형 작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자기 주도성을 갖는 책임지는 기관으로의 탈바꿈이 유인촌 장관의 주문이지도 않겠는가.
원본 나라에 복사본 들고 가지 말고 자기 것 가지고 가야 환영
지금까지의 해외교류를 보면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받으러 가는 모습이다. 잘했다 칭찬받고 싶은 속셈이겠지만 크나큰 착각이자 오해다. 제발 그리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현지에서의 당부다. 베를린만 해도 베를린필 등 굴지의 명문 오케스트라가 4개나 있고 오케스트라 자원이 어마하게 풍부한 종주국이다. 여기에 모차르트, 베토벤, 수백년 울겨 먹어 지겨운데 한국 오케스트라까지 자신들의 레퍼토리 갖고 와서 어쩌자는 것인가. 역지사지 하면 답이 나온다. 그들이 우리 것을 갖고 와서 한다면 당신은 갈 것인 가?
한참 달라진 세상, 어마하게 변한 지구촌 세상이다. 봄이 왔는데 철지난 외투를 입고도 감각이 없다면 무딘 사람이다. 자율과 창의가 숨 쉬지 않는 사회는 방송가요가 전국민을 사로잡는 포퓰리즘으로 넘친다. 아창제가 더욱 내공을 키우고 자신있게 행동해야 한다. 일년에 한번 콘서트가 전부가 아니다. 메세나운동 처럼 홍보, 마케팅도 강화해 창의가 뭔지, 왜 창작이 현대인의 삶과 생활에 필요한지를 알려야 한다. 외국인 수백만시대에 로비에 머리색이 다른 한 분을 찾을 수 없다면, 조병화 시인의 시처럼 '하루만의 위안'이다.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와 분리가 아니라 사회 통합과 융합의 에스프리가 흘렀으면 한다.
이 날 콘서트에서 객석을 가득 메우고 각자의 개성과 돋보인 작품성이 살아나 창작의 힘을 보여준 것에서 새로운 기운을 보았다. 다만 현행 우리 오케스트라의 99.9%가 창작을 외면하고 있다. 이같은 생태계를 바꾸지 않고 아창제 하나만으로 K콘텐츠 나라가 될 수 없다. 유장관께서 '창작 쿼트제' 를 성사시켜 주시고, 해묵은 과제인 예당과 오페라극장 분리 작업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 차원에서 확립해 주길 청원하는 바이다.
유인촌 장관 창작 쿼트제 도입하고, 예당과 오페라하우스 분리를
장관께서 예술가와의 환담 자리에서 왜, 세계적인 오페라 작품이 없는가? 답은 오페라 구장이 없어서다. 성악가 선수들은 이미 메트나 슈타츠오퍼에서 뛰고 있는데, 돌아오면 택배나 대리기사를 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갓길도 없이 막혀 있다. 그러니까 선수들 기량은 손흥민, 이강인, 박지성인데 전세살이 초라한 국립오페라단 신세 , 남의 레퍼토리하면서 국호를 앞세운, 저 가난했던 시절의 때를 아직도 못벗는다면 한류의 안방이 궁핍하다. 우리가 글로벌을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서양 배척이 아니라 우리 중심과 뿌리를 생각하는 때가 왔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실험판 아창제를 통과해 마스터피스로 가는 출발의 길목에 서있음을 보았다. 많은 예산과 무대, 인력이 더 투입되어야 한다. 일취월장 객석의 청중이 자란 것은 아창제의 공이다. 아무튼 작곡가들이 작품으로 밥먹고 사는 세상이 오려면 불타는 직원들의 의욕과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어느 봄날 꽃망울이 터지면 설레이는 가슴에 새가 날아들듯 혼탁한 세상을 창작의 샘이 정화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DNA를 보건데 언젠가 모차르트, 베토벤의 명성에 필적하는 우리 작곡가들이 나올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고 쌓인 만큼 터진다. 아창제가 의젓해졌고 폼이 잡혀간다.
우리가 세계 명곡이 부럽지 않을 바이올린 협주곡을 보유하다니 이신우, 조은화 '자연 스스로 그러하다', 최소리의 장구가 귓전에 맴돈다. 이날 아창제 출전 선수들, 김신, 이홍석, 조우성 작곡가의 신선함과 뜨거운 열정의 발산에 발걸음마저 가벼워졌다. 시작은 미약하나 아름답게 창대하리라. 아하, 아창제 로고송이나 하나 만들어 볼까나.
탁계석 음악평론가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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