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개탁(擧世皆濁)은 ‘온 세상이 다 흐리다.’ 라는 뜻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다는 말로, 사기(史記) 굴원열전(屈原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굴원(屈原)은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충신으로 학식이 뛰어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았고, 26세에 좌상(左相)이라는 중책을 맡아 내정은 물론 외교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다.
굴원은 당시 날로 강성해지고 있던 진(秦)나라에 맞서기 위해서는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설을 주장했으나, 왕과 다른 중신들이 연횡설을 주장하는 진(秦)나라의 장의(張儀)에 속은 바람에 실각하고 말았다. 결국 초나라는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전했으며, 이후에도 왕의 애첩, 적과 내통한 정적들 때문에 인질로 잡은 장의를 죽이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굴원의 진언을 듣지 않고 초대를 받았다며 진나라로 들어간 간 회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이 된 뒤 굴원은 결국 양쯔 강 이남으로 추방되었다.
굴원이 정계에서 간신과 정적들에 의해 쫓겨나 강남에 머무를 때 창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깨우친바가 있어 집필한 책이 그 유명한 ‘어부사’(漁父辭)이다.
굴원은 자신의 시에서 ‘죽어서 이 세상의 모범이 되고, 자살로서 간(諫)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는데, 그는 실제 창사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돌을 품고 들어가 죽었다.
‘어부사’에 따르면 어느 날 굴원이 강을 거닐며 시를 읊고 있는데 그를 알아본 어부가 벼슬에서 쫓겨난 이유를 묻자, 굴원은 “온 세상이 모두 흐렸으나 나 혼자만은 맑았으며, 뭇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고 말했다.
여기서 ‘거세개탁’이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초나라 관리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다 바르지 않아서 세상이 온통 흐려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설령 깨어있다 해도 그런 세상의 간신(姦臣)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무릇,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와 그 주변의 사람들이 투명하고 맑아야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것은 진리이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요즘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관리들이 맑은 처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서슴지 않겠다.
이념의 정치를 하면서 매카시즘을 불러오더니, 이제는 육사 교정에서 독립군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역사 반역행위를 하려고 한다. 시대착오적인 이념집단의 외교안보논리에 경도되면서 영토주권을 외면하고, 그래서 독도(獨島)는 말 그대로 외로운 섬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 재앙의 발단인 후쿠시마 핵 폐수같이 겉으로는 맑아보여도 속으로는 심각하게 오염된 일들이 도처에 산재해 보인다.
언론의 자유를 관장하는 자리에는 언론탄압 전력 논란이 분분한 분께서 임명되고, 검찰은 지금도 안개를 뚫고 전국에서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정치적 탄압’이라는 명분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
암울한 경제지표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흉포한 사람들로 인해 여성들을 비롯한 약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모든 탓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지금 한국사회가 전체적으로 쾌청하지 못하고 흐린 것은 권력자와 그 주변사람들의 탓이 가장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자(관중)은 ‘가장 나쁜 정치는 국민과 싸우는 정치’라고 했다. 권력자가 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파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당시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장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했던 사실이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인 그때는 4대강사업 등 권력 주변의 온갖 비리를 비롯해서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을 비롯한 지식인 사회, 공무원 사회까지 혼탁함이 만연했었다. 또한 권력자는 이런 것에 못마땅해 하는 국민들과 연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 또 그런 상황이라니 부끄럽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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