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 칼럼] 고사성어와 오늘

송금호 | 기사입력 2023/08/14 [14:31]

[송금호 칼럼] 고사성어와 오늘

송금호 | 입력 : 2023/08/14 [14:31]

수 천년 동안 인간세상에서 있어왔던 사례들이 모아지고 추려져서 정제된 것이 동양의 고사성어가 아닌가 싶다. 옛 일을 반추해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곧 사람의 도리를 찾는 일이다.

 

고사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서 음미하고, 그로 인해서 생긴 인간의 지혜와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것도 의미가 클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어지러운 때 국가와 사회와 권력의 지향점을 가르쳐주고, 사람들의 갈길을 비추어 주는데 고사는 더없이 유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순복비(反唇腹誹) - 입을 삐죽 내미는 것은 뱃속으로 조정을 비방하는 것이다. 중국 한무제 때 '안이'라는 사람은 청렴하고 공평무사하여 구경(九卿ㆍ고관대작)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반면, '장탕'(張湯)이라는 신하는 황제의 비위를 잘 알고 잘 맞춰주는 신하로써, 소금전매법 등 황제를 위한 제도 시행과 법(法)을 가혹하게 적용하기로 유명했다.

 

'장탕'은 고관대작을 다 제치고 황제의 신임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는데, 어느날 황제인 한무제와 장탕이 백록(白鹿ㆍ흰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피폐(皮幣ㆍ일종의 화폐)를 미리 만들어 놓고 '안이'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안이'가 대답하기를 “오늘 황제께 제후왕이나 열후가 4천냥 가치가 나가는 벽옥(碧玉ㆍ푸른색의 구슬)을 조공으로 바치나, 그 벽옥을 싸는 사슴 가죽은 오히려 40만전이나 하니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흰사슴 가죽으로 만든 화폐를 반대했다.

 

한무제는 이를 듣고 불쾌해하였으나, 결국 화폐를 만들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장탕'은 그렇지않아도 '안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지라 무슨 생각을 품게되었다.

 

얼마뒤 어떤 자가 "'안이'가 조정을 비방했다."고 고변(告變)해 '장탕'이 사건을 맡는다. 내용이라는 것은 '안이'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다가, 그 손님이 말하기를 "조령(朝令ㆍ조정의 명령)이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다"고 불평을 해대자 '안이'는 맞장구는 치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는데,(反脣ㆍ반순) 그것이 손님의 말에 동의를 표시한 것같았다고 했다. 

 

손님의 진술을 확보한 장탕은 "고관(高官)의 신분으로 조령(詔令)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입조(入朝)하여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게 개진해야지 오히려 마음속으로 조정을 비방한 것은 죽을죄에 해당한다."며 한무제에게 고해바쳤다.

 

'안이'는 마음속으로 비난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장탕'은 마음속으로 비난한 증거를 제시했는데, 그 증거가 바로 '입술을 삐죽거림' 즉, 반순(反脣)이라는 것이었다.

 

한무제는 결국 '안이'를 주살했는데, 이 일로 해서 복비법(服誹法) 즉, 마음속으로 비난을 해도 처벌하는 법이 생겨났고, 이 후로 대부분의 공경대부들은 아첨 일색이 되었다.

 

여기서 반순복비(反脣腹誹)-입술을 삐죽 거리는것은 마음속으로 비난하는 것)이라는 말과, 마음속으로 비난을 해도 죄를 물어서 처벌하는 복비죄(服誹罪)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고사사는 지금으로부터 2040년 전 제왕적 군주 시대의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자유 대한민국에서도 곱씹어 볼 일이다. 입술만 삐죽거렸어도 속마음을 유추(類推)하고, 그 유추된 것을 간주(看做)해서 죄를 묻는 것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속마음에서라도 권력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하면 가차없이 죄를 묻는 이 복비법으로 인해 한무제 당시 간언(諫言)을 하던 충신들은 줄어들고, 간신배(奸臣輩)들이 우글거렸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지도자 주위에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뻔한 것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하고, 잘못된 것도 애써 외면하고, 세상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해도 굳이 맞다 라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고위 정치인과 수많은 장,차관급 인사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입을 닫고 있는가? 입을 삐죽거리지도 못할거면 차라리 옷을 벗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가서 살 일이지, 권세를 누리면서 세금을 축내며 자리보전이나 하면 후세까지 부끄러울 일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제지만 제왕적 권위를 갖고 있다. 경제나 교육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행사되는 대통령의 영향력 파급은 재임기간을 넘어 10년을 더 갈수도 있고, 나아가 국가 운명의 방향까지 바꿀수 있다.

 

대통령 주변의 권력자들이여, 혹시 훗날 대통령에게만 잘못된 책임을 떠넘길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자리를 내놓더라도 간언(諫言)을 하는 공복(公僕)이 되어보시라. 걱정하건데, 2040년 전 중국 한무제 때의 '안이'처럼 반순(反脣)으로 최고권력자에게 당할까봐 겁이 나서 못하는 것은 아니길.

 

송금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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