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조기가 굴비(屈非)가 된 사연

윤학배 | 기사입력 2023/07/26 [09:47]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조기가 굴비(屈非)가 된 사연

윤학배 | 입력 : 2023/07/26 [09:47]

  © 문화저널21 DB


참으로 무더운 날씨다. 이러한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가 얼음 동동 떠있는 시원한 녹차 물에 ‘보리굴비’ 한 점 얹어 먹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특유의 감칠맛이 영양도 만점이고 맛도 일품이다.

 

보리굴비는 통보리를 가득담은 항아리 속에 반건조 시킨 조기를 넣어서 숙성시킨 굴비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조기와 굴비는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물론 바다에서 잡은 생선인 조기가 건조되어 가공된 것이 굴비이고 그중에서도 전남 영광 법성포의 굴비를 가장 으뜸으로 친다.

 

영광 법성포 굴비는 수산분야에 있어서 지리적표시제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아마도 물고기를 그램 등 무게단위로 따져서 판매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물고기는 조기가 아닐까 한다. 귀한 생선 조기나 굴비의 인기는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 속담이나 옛 이야기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생선이 조기와 굴비이고 그 맛도 예나 지금이나 으뜸으로 쳐주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짠돌이이자 구두쇠인 ‘자린고비’ 이야기에도 항상 굴비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굴비는 한자로는 ‘屈非(굴비)’ 즉 ‘굽히지 않는다’ 라는 의미이다. 참으로 물고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자어 이름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많은 물고기의 한자어 이름은 1814년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이 붙여 주었는데, 굴비는 특이하게도 조선시대가 아닌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외척 집안으로서 권세를 누렸던 이자겸이라는 권신이 전남 영광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왕이던 고려 인종에게 자기가 먹어본 생선 중 최고로 맛이 좋은 굴비를 진상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나타내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불의에 굽히지 않고 비굴하지 않다는 뜻으로 ‘굴비(구부러지지 않는다)’라고 적어서 진상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생선 조기를 말린 굴비의 이름이 탄생하였다. 사실 당시에는 생선은 상하기가 쉬워서 말리거나 젓갈로 만들지 않고는 운반이 되지 않았으므로 날 생선인 조기는 당연히 진상이 될 수 없었고 말린 굴비만 진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여하튼 굴비는 생선 이름의 유래치고는 참으로 철학적인 이름이고 유서가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이름이다. 세계의 물고기 이름에 이런 유래가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대부분 지명이나 모양새를 따서 물고기 이름을 지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침 다행히도 이자겸이 이를 굴비라 했기에 망정이지 같은 의미를 지닌 ‘비굴(非屈)’이라 했으면 굴비의 모양새가 참으로 이상하게 될 뻔 했다.

 

물론 한자는 좀 다르지만 비굴한 물고기라니! 동해안에서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도망도 가지 않는 물고기 뚝지를 사투리로 ‘멍텅구리’라고 부르는 것에서 좀 모자란 듯한 사람을 놀리는 ‘멍텅구리’라는 말이 유래하고 있다. 아마도 굴비 아닌 비굴이 되었다면 이 멍텅구리 보다 더 갑갑한 이름이 될 뻔했다. 

 

요즘도 설이나 추석 등 우리 명절 때가 되면 인기 있는 선물의 하나가 굴비이다. 유서 깊은 전통과 유래를 가진 만큼이나 지금도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굴비이다.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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