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야 도루묵이야!
그 물고기 맛이 일품이어서 ‘은어(銀魚)’라는 멋진 이름을 하사하고 매년 특산품으로 바치게 하였다(대개 물고기 ‘어(魚)’가 들어간 경우는 ‘~치’ 로 불리는 물고기보다 제사상에도 오르는 등 제대로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후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그 은어 맛을 보니 맛이 별로여서 하사했던 그 은어라는 이름을 삭탈하고 도로 목어로 부르게 하여 순식간에 귀한 생선에서 쓸모없는 생선으로 푸대접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선조가 평안북도 의주 방향으로 피난을 간 것이기에 동해안 해안가 방향으로는 피난을 가지 않았다, 아마도 함경도나 강원도 방면으로 의병을 모르러 간 왕자들인 선조임금의 아들 임해군이나 순화군 중 하나와 얽힌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여하튼 임금이든 왕자이든지, 목어이든 묵어 이든지, 도루묵은 임금이 친히 지은 영광스러운 직함인 은어에서 삭탈관직은 아니어도 이름이 삭탈되고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 도로 묵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마도 이름을 삭탈관직당한 전무후무한 물고기가 아닐까? 주로 많이 잡히는 강원도에서는 ‘도루메기’라고도 불린다.
도루묵 같은 우리들 삶
“예로부터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네. 이름은 그저 겉 치례에 불과한 것.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유유자적함이 그대의 참 모습이 아니겠나.”
동해안의 도루묵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가 도루묵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으니 도루묵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식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물고기 도루묵이 아니라 세상의 일에 파묻혀 출세와 부를 쫒아가기 바빠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살짝 비틀어 쓴 현실 풍자시이자 세상일에 너무 몰두하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시라 생각된다.
물고기 도루묵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이다. 그럼에도 한 눈 잠깐 팔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은어이든 아니든 대단한 도루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어엿하게 시의 대상이 되어 우리에게 세상의 이치를 몸소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또 누구의 입속에서 술 안주가 되어 삶을 위로하며 그 이치를 가르치고 있을지!
은어가 아닌 도루묵으로, ‘말짱 도루묵’이 아닌 대단한 도루묵으로...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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