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 그대로 뉴스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너무 많은 새로운 소식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채 귀와 눈으로 주워 담기 바쁘다. 이럴 때 잘 정리된 올바른 소식을 전달해 주는 이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 anchor들이다.
이전에는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을 아나운서나 캐스터라 불렀던 것이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앵커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아나운서는 말 그대로 소식을 전달해주는 사람이고 캐스터도 유사한 의미라고 보여 진다. 아나운서는 뉴스를 이끌고 자기의 의견과 견해를 표명하고 정리해주는 적극적인 역할보다는 뉴스원고를 정학한 발음과 억양으로 시청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여 진다. 그렇다고 물론 이들 아나운서와 캐스터의 역할을 과소평가 하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프로그램이 표류하지 않게 하라, 앵커
그런데 최근에는 뉴스 진행자 뿐 아니라 시사프로그램이나 연예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앵커라고 불린다. 물론 연예 프로나 쇼 프로그램의 경우 앵커 이외에 엠씨(MC)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행사의 주관자이자 진행자라는 의미의 ‘Master of Ceremony’의 줄인 말로 앵커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이전에 우연히 TV골프 채널인 ‘고교00 최강전’을 공동 진행하는 이 혜지 프로 골퍼겸 앵커와 라운딩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이 프로에게 앵커의 유래를 이야기 해주었더니 자기가 그동안 앵커로 활동을 해왔는데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바다에서 나온 것이 놀랍다며 주위에 널리 알리겠다고 하여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요즘에는 라디오나 TV와 무관하게 그리고 프로그램 관계없이 통상 진행자를 앵커라 부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이 앵커란 말은 바로 배의 닻 anchor와 같은 단어이자 같은 의미이니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바다에 있어야 하는 배의 닻이 TV로 올라 왔을까? 그 이유는 바로 닻의 역할 때문이다. 바다에서 배의 닻은 바다 밑바닥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서 배가 표류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닻이 없는 배는 선장 없는 배와 같아서 조류와 해류에 휩쓸려 배가 가야할 항로를 이탈하거나 심하게는 먼 바다로 방향을 잃고 떠내려 가기도 한다.
바로 TV속의 앵커도 뉴스나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마무리 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논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출연자를 잘 지원하거나 가끔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경우가 생기면 재빨리 수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앵커의 경쟁력은 바로 그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된다. 말하자면 앵커는 뉴스나 프로그램이라는 배가 출항을 해서 방송이라는 항해를 하면서 최종 목적지 항구인 방송 마무리까지 사고 없이 계획된 프로그램대로 잘 항해하도록 항해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로 방송 앵커는 작게는 이름 그대로 배의 닻의 역할이지만 크게는 선장의 역할을 한다. 뉴스 앵커란 말은 1960 년대 이후 미국방송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바다를 잘 이해한 탁월한 어휘 선택이라 생각된다. 이 정도면 모망도 창조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봉두완 앵커가 본젹적인 앵커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배에서 선장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하듯이 프로그램 앵커는 당연히 그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 주위에도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유능한 앵커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선장 중에서도 해적선 선장이나 노예무역선 선장이 있었듯이 개인 인기만을 좇아가는 엉터리 같은 앵커가 없지 않지만 말이다.
배의 닻이 중심을 잡아주듯,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이슈들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고 방향을 잘 제시해주는 진정한 세상의 닻 역할을 해주는 명 선장, 명 앵커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고 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바다는 끝이 없다. 바다처럼.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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