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우리의 ‘방방곡곡’과 일본의 ‘진진포포’

윤학배 | 기사입력 2023/05/10 [09:35]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우리의 ‘방방곡곡’과 일본의 ‘진진포포’

윤학배 | 입력 : 2023/05/10 [09:35]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과 전국 진진포포(津津浦浦)

 

과거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어쩌다 해외에서 열리는 국가 대표간의 경기를 위성중계 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 축구경기가 대표적이었는데 흑백화면으로 나오는 중계를 보고 있으면 “안녕하십니까? 밤늦도록 이 경기를 시청해 주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계신 국민 여러분...” 이라는 약간은 흥분한 듯한 우리 중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사실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 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데, 지금은 고인이 된 ‘전국 노래 자랑’의 사회자이자 국민 MC였던 송해 선생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외치곤 했던 친근한 멘트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일본 아나운서가 일본 경기를 중계한다면 이 표현이 어떻게 달라질까? 모두 같겠지만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에 계시는..’이 ‘전국 진진포포(津津浦浦)에 계시는..’으로 바뀔 것이다. 다 아는 것처럼 방방곡곡은 말 그대로 전국 산골의 구석구석이나 골짜기 골짜기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진진포포는 느낌으로 알 수 있듯이 바닷가 나루터 나루터와 해안 지역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진(津 또는 鎭)이라는 지명은 부산진이나 강화 초지진처럼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해안이나 강가의 지형과 마을에 붙여진 이름이고 포(浦)는 제물포나 마포처럼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나루터를 의미한다. 

 

‘방방곡곡’과 ‘진진포포’라는 한마디 말의 차이가 우리와 일본이 바다를 보는 시각과 역사와 철학의 큰 차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육지 지향형 국가였고 일본은 바다의 나라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대륙을 지향하며 살아왔던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는 중국 영향 아래 있었고, 그러기에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섰던 기간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광복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래도 바다와 해외로 눈을 돌렸던 최근 수십 년 기간이 아마 역사상 중국을 능가해 본 유일무이한 최초의 시기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 할 것이다. 우리가 이 기간을 50년이나 100년으로 늘리기 위해 아니면 최소한 거꾸로 다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기회와 미래인 바다로 가야 한다. 

 

복지부동 관료와 넙치 관료

 

공직자로 현직에 있을 당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바로 ‘복지부동’ 이란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정권 교체기나 어떤 민감한 사안이 부각되면 공직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치권이나 외부의 눈치만 보면서 소극적이고 피동적이라며 호되게 비판하곤 한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정치적 변동이 심한 일본 역시 이와 같은 의미의 말이 있다. 그런데 육지 지향형인 우리와는 다르게 바다의 나라인 일본은 그들답게 정치권이나 위의 눈치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 공직자를 일컬어 ‘넙치관료’ 라고 부른다.

 

넙치관료라니! 일본 관료들은 광어회를 너무 좋아해서 넙치관료라 불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회를 먹을 때 가장 인기가 있는 광어라고도 불리는 넙치는 바다 바닥에 엎드려 지내는데 눈이 둘임에도 왼쪽에만 붙어 있어 같은 방향만 보게 된다. 물론 넙치도 태어 날 때는 보통 물고기처럼 양쪽에 눈이 있지만 성장해 가면서 왼 쪽으로 붙어 결국에는 두 눈이 한 면에 붙어 있게 된다. 우리의 복지부동 관료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을 때 일본의 넙치관료는 ‘바다 바닥’에 바싹 엎드려 회오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방방곡곡과 진진포포, 그리고 복지부동 관료와 넙치관료는 우리와 일본아 가진 바다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바다가 일본인들의 생각과 일상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 아주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우리의 바다의 날(5.31일)이 수십 개의 기념일중 하나로 일반국민들에게 생소한데 비해 일본의 바다의 날인 7월 셋째주 월요일은 소위 빨간 날로 공휴일이기에 황금의 3일 연휴이다. 당연히 일본인들 모두 바다의 날을 기억하고 바다에 감사해 한다.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주저하거나 꾸물대지 않아야 한다. 더 늦지 않도록 바다를 기억하고 소중히 가꾸고 바다로 가야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계시는 국민여러분, 이제 좁은 골짜기를 나와 넒은 바다로 가야 할 때입니다.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

 

윤학배

1961년 북한강 지류인 소양강 댐의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강원도 춘성군 동면의 산비탈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 붓당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이후 춘천 근교로 이사를 한 후 춘천고를 나와 한양대(행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8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6년 당시 해운항만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바다와 인연을 맺은 이래 정부의 부처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다시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였다. 2013년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 2015년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을 역임하였으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31년여의 바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공직 기간중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와 영국 런던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6년여를 근무하는 기회를 통해 서양의 문화, 특히 유럽인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과 애정,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행정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호모 씨피엔스 Homo Seapiens”가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