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9/13 [09:59]

[이 아침의 시]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서대선 | 입력 : 2022/09/13 [09:59]

정말 그럴 때가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 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던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 ‘노여움은 사려 깊은 사람조차도 거칠게 만들고,/그것은 또 똑똑 떨어져 내리는 꿀보다도 훨씬 달콤하기에/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커져갑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영웅 아킬레우스(Achileus)가 트로이아 전쟁에서,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Patroklos)의 전사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했던 말이다. “노여움”은 누군가에게 명백하게 무시를 당했을 때, 그것도 무례하고, 적절한 이유도 없이 폭력처럼 당했을 때 생긴다. 하지만 노여운 감정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당한 만큼 꼭 갚아 주고 싶은 복수의 욕망이 함께 끓어오른다는 것이다. 노여움은 상대에 대한 응징을 상상할 때 생기며,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할 수록 고통을 넘어 달콤해진다.  

 

그런데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노엽고 외로운” 감정들을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 그런 사실을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떨까? 단지 감정을 만들어 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알아차릴 수 없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은 ‘인간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라고 보았다. 그녀는 ‘깨어있는 매 순간 당신의 뇌는 개념으로 조직된 과거 경험을 사용해 당신의 행동을 인도하고 당신의 감각에 의미를 부여한다. 관련 개념이 감정 개념인 경우, 당신의 뇌는 감정의 사례를 구성하는 셈이다.’ 라고 주장했다.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에 의하면 우리가 경험하고 지각하는 감정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개념이 의미 있고 쓸모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정 사회 맥락에서 성장했기에 생겨났다고 본다. 감정은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산물이며, 감정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학습했기 때문이다. 

 

감정은 기억이나 판단, 결정과 같은 뇌의 인지 작용처럼 <예측-시뮬레이션-감각 입력과 비교-오류수정>의 과정을 거쳐 구성되는데, 예측은 뇌의 기본 작업 모드(Default Mode) 로서 내인성 신경망(Instrinsic Network)이 하는 일이다. 우리의 뇌가 최종 예측을 위해 사용하는 기초 자료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다. 뇌는 과거에 경험한 비슷한 내수용 감각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현재의 입력 정보와 비교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노여움”이라는 감정의 한 사례를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여 이것을 노여움으로 범주화(categorization)해서 노여움이라는 감정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이며, 인간은 ‘감정의 파도에 휘둘리는 배가 아니라, 배를 어디로 몰고 갈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선장’이라고 보았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금세 울음이 터질 것같은/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런 때에는 연필 한자루를 잘 깎아/글을 씁니다”라고 시인은 전언한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어휘력은 개념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을 통해 논리적 판단을 바꾸고, 상대의 품성(ethos)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까지도 원하는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다.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자신이 구성한 “노여움”이라는 감정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다양한 어휘력을 사용해서 감정을 세분화 해보면서 감정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를 높이는 것이다. 예컨대, "노여움"으로 발생한 분노가 정말 타인에게 ‘무시’ 당해서 생긴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노여움”을 일으켰던 상대가 열등감이 심하다거나,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거나, 질투심과 부러움 때문이거나, 자신의 숨겨진 과거의 상처로 인한 자기방어였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힌 자라고 깨닫게 되면, “노여움”으로 괴롭고, 복수하고 싶던 거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감정이란 뇌의 특정 부분에 지문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 자신이 구성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훨씬 더 많은 통제권을 지닐 수 있다. 우리는 뇌의 주인으로서, 우리 삶의 주인으로서 범주화를 통해 의미를 창조하고, 재범주화를 통해 의미를 바꿀 수 있는 주체적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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