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단골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 김완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8/29 [09:14]

[이 아침의 시] 단골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 김완

서대선 | 입력 : 2022/08/29 [09:14]

단골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단골집 식당이 사라졌다

그 식당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사소한 즐거움 하나를 잃어버렸다

약속을 잡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

낯익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과 맛깔 나는

된장찌개 내주던 할머니 백반집도 사라지고

알싸한 고향바다 냄새를 토하며

한여름 허기를 달래주던 깡다리 집도 사라졌다

기막힌 국물로 국수를 말아주던

간판 없는 작은 식당도 사라진지 오래다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향기롭게 하던

작은 공간들이 그렇게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구원과 위안은 미래의 원대한 것보다

오늘의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온다

 

단골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대체할 수 없는

사소한 위안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동네 식당에 드나들던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식당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이 바뀔까

 

# ‘못 보던 얼굴이네. 슴슴하면 육젓을 넣어. 내가 매년 소래포구에서 직접 골라 천일염으로 담근 거야’ 하얀 종지에 담긴 육젓 새우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맛있었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온 우리는 주말 아침 새벽 동네를 산책하며, 새로운 길들과 만났다. 신축한 아파트 단지 주변엔 수천 평에 이르는 파밭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은사시나무 숲 사이로 시외버스 지나는 길이 안개 속에서 구불거렸다. 한참을 걷다가 큰길로 나왔는데, 조그만 슈퍼와 문방구와 철물점을 지나자 한 눈에도 묵어 보이는 노포(老鋪)가 보였다. 새벽에도 문을 열었기에 들어섰더니, 동네 단골인 듯한 사람들 대여섯이 앉아 있었다. 메뉴는 딱 한 가지 서울식 ‘추탕’이었다. 할머니는 투박하고 큰 손으로 펄펄 끓는 탕 그릇을 식탁에 놓으며, 젊은 우리 부부를 외국인 보듯 했다.

 

식탁에 올려진 탕 그릇 속 국물은 얼큰해 보였다. 숟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가득한 내용물 속에는 푹 우려진 양지머리와 곱창, 유부와 두부, 버섯들 사이로 부드럽게 휘어진 미꾸리가 푸른 대파 이파리를 걸치고 뜨겁고 얼큰한 탕 속에 어우러져 있었다. 사십 년째 한 자리에서 추탕만 끓였다는 할머니는 마장동 우시장에서 직접 고기를 고르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우를 고르려 매년 오월이 되면 소래포구를 다녀오고, 서해안에서 천일염을 사고, 배가 노르스름하고 뼈가 부드럽다는 미꾸리를 직접 골랐다고 했다. 할머니가 끓여준 탕으로 때로는 생리적 허기를 채웠고, 정서적 허기가 질 때도 찾아가는 “단골집”이 되었다.  

 

사람들이 굳이 “단골집”을 찾는 이유는 무얼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생리적 허기를 채우는 행동만이 아니라 정서적 허기를 채우려 먹기도 한다. 실제로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픔 호르몬’이라 불리는 랩틴(Leption)과 그렐린(Ghrelin)의 레벨이 높아져 음식섭취를 유도한다. 어디서 무엇을 먹어도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겠지만, “단골집”이 있다면 심리적 만족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정서적 허기는 감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지루한 날들이 지속될 때, 외롭거나 슬프거나 노여울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불만으로 누적될 때, 썩은 무처럼 안으로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안개처럼 뒤엉길 때, 노력해도 나빠지는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지속 되면 스멀스멀 생겨난 정서적 허기가 자칫 폭식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럴 때, “단골집”이 있다면, “약속을 잡지 않아도 그곳에 가면/낯익은 사람들 만날 수 있”어 눈인사 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향기롭게 하던/작은 공간들” 속에 함께 앉아서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과 맛깔나는/된장찌개 내주던 할머니 백반”을 먹을 수도 있고, “알싸한 고향바다 냄새를 토하며/한여름 허기를 달래”주기도 하고, “기막힌 국물로 국수를 말아주던” “간판 없는 식당”에서 “사소한 위안”을 얻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단골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대체할 수 없는/사소한 위안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다/그 동네 식당에 드나들던 사람들에게는/아름다운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식당 하나 없어진다고 세상이 바뀔까”. 그랬다. “단골집”이 된 할머니네 식당을 드나든 지 십여 년이 지난 어느 주말 아침, “단골집”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며칠 후 동네 골목에서 만난 파밭 아저씨에게 식당 할머니께서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가 끓여주던 탕을 앞에 놓고, 할머니 식당을 중심으로 작은 행성처럼 돌던 젊은 부부였던 우리는 더는 동네 소식과 따스한 안부와 위로를 먹던 할머니의 음식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단골집” 할머니가 불랙홀로 사라지자, 아파트 건설 회사에 파밭과 맞바꾼 액수가 적힌 통장에서 매일 국밥 값만큼만 돈을 찾아 할머니 추탕을 마음껏 먹는다고 자랑하던 파밭 아저씨도, 아파트 분양에 신이 났던 복덕방 아저씨도,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몰고 오던 은사시나무 숲 근처 기와집에 살던 은퇴한 교장 선생님 부부도, 말수 적었던 철물 집 아저씨도 모두 다른 궤도를 찾아 흩어져 버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