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케인즈’ 조순 전 경제부총리 영면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2/06/23 [14:23]

‘한국의 케인즈’ 조순 전 경제부총리 영면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2/06/23 [14:23]

▲ 23일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문화저널21 DB)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금일 새벽 노환으로 타계했다(1928∼2022). 조 전 경제부총리는 저명 경제학자 겸, 서울시장, 민주당 총재, 한나라당 총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의 정치행보는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천됨으로서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케인즈 학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과 제자를 남겨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조순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인맥을 구축했다. 이 때문에 조 순을 ‘한국의 케인즈’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 

 

토지공개념 도입 주도한 경제거목

경제부총리, 한은 총재 등 역임한 경제통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삶은 실로 파란만장하다. 196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발탁됐으며, 이후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제1대 민선 초대 서울시장(새천년민주당)을 역임한 후, 1998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여의도 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심하다 1997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후, 한나라당을 창당해 총재에 오르기도 했다.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2000년 4월 제16대 총선 직전 조순, 김윤환, 이기택 등 당시 명성을 날리던 정치거목들을 모조리 낙천시켰다. 

 

이때 낙천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대표최고위원에 오르기도 했으나, 민주국민당이 2석의 의원확보에 그치는 등 실패해 정계 은퇴했다. 그는 이회창 총재에게 버려져 정계를 떠난 비운의 정치인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는 정계은퇴 후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직을 맡아 경제 쪽 조언을 했으며, 2002년부터 5년간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외에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조순 전 부총리는 비록 정치적으로 비운을 당해 정계를 떠났지만,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은 역사에 깊이 각인돼 있다. 

 

1974~1974년 한국무역연구소 소장, 1978~1979년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1988~1990년 경제기획원 장관(부총리), 1992~1993년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부총리 재직 당시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과 공저한 경제학원론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원론 교과서로 꼽히고 있다.

 

조순 전 부총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고,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유족은 부인 김남희 여사와 아들 조기송, 조준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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