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어느 여름 / 신현정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6/07 [06:01]

[이 아침의 시] 어느 여름 / 신현정

서대선 | 입력 : 2022/06/07 [06:01]

어느 여름

 

애벌레들이 녹음을 와삭와삭 베어먹는

나무 밑에 비 맞듯 서다

옷 젖도록 서다

이대로 서서 뼈가 보이도록 투명해지고 싶다

 

# ‘애벌레 같지 않아요, 우리’. 마주 앉아 상추쌈을 “와삭와삭” 베어먹다, 문득 푸른 이파리들을 열심히 베어먹고 있을 “애벌레” 생각에 웃음이 났다. 푸른 이파리들을 “와삭와삭” 베어먹은 애벌레는 머지않아 나비나 나방이 되어 날아오르리라. 녹색 채소를 열심히 먹는 우리 몸속에도 흙의 기운이 스미고, 물기가 스미고, 바람이 스치고, 햇살이 세포마다 찾아들면, 정신의 우듬지까지 푸른 이파리들의 잎맥이 벋어나가 "투명“해지는 삶을 살고 싶다. 

 

봄부터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 한번 제대로 맞지 못한 텃밭의 고추 모종 이파리가 늘어졌고, 지지대를 타고 오르던 토마토 줄기 끝이 빈혈에 걸린 듯 노르스름해져 간신히 지지대를 끌어안고 있고, 가지, 아욱, 상추, 쑥갓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호스를 끌어 텃밭에 물을 주니 마른 흙가루가 푸슬푸슬 날린다. 말간 하늘을 쳐다보며 구름은 모두 어디로 갔나 두리번거려 본다. 강우량이 평년대비 6%에 그쳐, 저수지도 말랐다는 뉴스에 목 안이 깔깔하다. 

 

텃밭에 물주고, 뒷산에 오른다. 턱없이 오르는 물가와 팍팍한 세상살이에 마음에도 먼지가 일 땐, 뒷산에 올라 숲의 위로를 받는다. 백 년도 넘은 굴참나무 아래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연다. “애벌레들이 녹음을 와삭와삭 베어먹는” 소리가 는개처럼 내린다. 나도 한 마리 “애벌레”처럼 굴참나무 아래서 푸른 숲의 “녹음”을 “와삭” 깨물어 본다. 피톤치드(phytoncide)의 향이 입안 가득 고인다. 자연의 삶 속에서 식물들은 외부 유해인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균작용을 가진 다양한 화합물을 만드는데 이것이 피톤치드이다. 숲에서 피톤치드는 휘발성 형태로 흘러 다니며,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우리 몸에 흡수된다. 피톤치드 속에 들어있는 알파-피넨(alpa-Pinene)은 항암이나 항균, 항상화 등의 효능이 있고, 캄펜(camphene)은 콜레스테롤의 저하에 효능이 있고, 베타-피넨(beta-Pinene)은 항우울 작용에 효과적이며, 미르센(myrcene)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과 유아에 좋다고 한다. 굴참나무 이파리가 천수관음의 손이 되어 머리도 쓸어 주고 마음의 갈피마다 쓰다듬어 준다. 

 

굴참나무 아래 앉아서 가문 날 찾아오신 "비 맞듯” 피톤치드에 젖는다. 몸도 마음도 흠뻑 젖는다. 이대로 “뼈가 보이도록 투명해지고 싶다”. 바람이 슬쩍 굴참나무 이파리를 흔들자 새끼를 먹이려 벌레를 찾아 날아오르는 꾀꼬리의 날갯짓이 파동이 되어 이파리마다 날개를 달아준다. 나도 꾀꼬리를 따라 맑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투명해진 뼈들” 사이로 뭉게구름이 스친다. 새끼 꾀꼬리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를 이파리들이 퍼 나른다. 점심때구나.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산 아래로 내려간다. 가벼워진 몸과 “녹음”에 젖은 마음으로 텃밭에서 거둔 상추와 쑥갓 쌈을 한 입 크게 “와삭” 베어 먹으며, 시원한 빗줄기가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오길 기다려야겠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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