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귀한 마주침, 텅 빈 충만 / 엄원태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5/23 [06:01]

[이 아침의 시] 귀한 마주침, 텅 빈 충만 / 엄원태

서대선 | 입력 : 2022/05/23 [06:01]

귀한 마주침, 텅 빈 충만

 

목요일 늦은 오후, 텅 빈 강의실 복도에서 쓰

레기통을 비우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

친다. 눈이 마주치자 몸피가 조그만 아주머

니는 내게 다소곳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내가 마치 ‘높은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손한 인사. 무슨 종류일지 

짐작 가는 바 없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결

핍’이 저 아주머니의 마음에 가득하여서, 마음 

자리를 저리 낮고 겸손하게 만든 것이겠다. 

저 나지막한 마음의 그루터기로 떠받치고 품

어 안지 못할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일까?

 

아주머니, 쓰레기들을 일일이 뒤적여 종이

며 캔과 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어 따로 챙긴

다. 함부로 버려진 것들에서 ‘소중한 어떤

것’을 챙기는 사람 여기 있다. 아주머니는 온

몸으로, 시인이다. 

 

# ‘잘 지냈니? 상추를 부탁해’. 상추 모종을 심으려 밭고랑을 호미로 파는데, 한 뼘도 넘는 튼실한 지렁이가 꿈틀 몸을 비튼다. 얼른 호미를 내려놓고 지렁이를 살피니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다. 얼른 흙으로 지렁이를 덮어 주며 올해도 건강한 유기농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상추를 부탁했다. 지렁이는 흙 속을 기어 다니며 부패한 생물체를 먹어치우는 자연계의 “청소부”다. 뿐이랴, 흙  속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자신의 배설물로 흙을 비옥하게 할 것이다. 상추 뿌리는 지렁이와 ‘귀한 만남’ 속에서 뿌리를 꼼지락거리며 영양분을 흡수하고, 물과 햇빛과 손잡고 상추를 튼실하게 키울 것이다.

 

자연계 청소부들의 종류에는 죽은 동물이나, 곤충, 식물 등을 먹는 밑들이류(scorpionfly), 동물시체 및 배설물 등을 분해하는 미생물(microorganism), 동물들의 분변을 먹는 풍뎅이과의 딱정벌레, 동물시체를 먹는 하이에나, 까마귀, 대머리수리, 송장벌레, 노래기, 숫지렁이 등이 있다. 생태계에서 죽은 동식물이나 유기물을 분해하며 청소부 역할을 하는 생물을 분해자(分解者)라 부른다. 이런 분해자가 없다면 지구는 바로 동식물의 시체로 메워질 것이다. 곰팡이나 세균 같은 미생물은 소형 분해자이다. 최근 국립생물자원관과 경상대 연구팀은 국내 자생하는 야생버섯 20여 종에 속하는 70여 균주를 시험한 결과 벤젠, 나프탈렌, 안트라센과 같은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분해력이 뛰어난 간버섯, 느타리버섯, 노란다발버섯, 송편버섯, 구름버섯, 메꽃버섯붙이 같은 버섯들이 난분해성 물질을 분해하는 능력이 뛰어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처럼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시간당 1달러를 줄려고 했는데, 50센트를 올려 1달러 50센트를 주겠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라고 놀라워하며 묻는 미국인에게 도산 선생은 ‘한국사람 입니다.’ 라고 답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성실합니까? 이제부터 당신은 청소나 하는 청소부가 아니라 훌륭한 신사입니다.(You are not a boy, you are a gentleman.).’ 환경의 변화, 공간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도산 선생은 일제 강점기 미주동포들의 가정을 돌며, 마당 풀 깎고, 창문에 커튼 달고, 집에 페인트칠 하자고 설득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도산은 청소를 통해 조선 민중의 정신 속에 찌들어 있던 악습과 나태와 열등감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자 했다. 깨끗하고 정돈된 민족으로서의 이미지를 미국 사회에 심어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던 도산 선생의 열정과 실천에 마음이 움직였던 미주 동포사회는 거짓말이 사라지고, 술판과 게으름과 도박이 사라지고, 다툼과 분열과 시기와 질투가 사라졌다고 했다. 도산은 공간혁명을 통해 ‘정신의 청소를 강조했던 정신의 청소부’ 였다.

 

늦은 오후, 시인은 학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작은 몸피”를 “공손하게” 낮추어 교수인 자신에게 인사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저 나지막/한 마음의 그루터기로 떠받치고 품어 안지 못할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일까?”하고 반문한다.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일일이 뒤적여 종이며 캔과/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어 따로 챙기는 “청소 아주머니”는 다음날 학생들이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텅 빈 충만“을 만드는 고맙고 귀한 분이다. “함부로 버려/진 것들에서 ‘소중한 어떤 것’을 챙기는” “청소 아주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공간으로 바뀔 수 있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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