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가족 / 노향림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4/25 [09:07]

[이 아침의 시] 가족 / 노향림

서대선 | 입력 : 2022/04/25 [09:07]

가족

 

나는 서투르다.

은행나무 분재를 들여놓아도

곧 낙엽 져 떨어진다.

허리 잘린 그 몸에 아기 손처럼 돋아

하늘을 받들던 잎들이 진다.

그 뒤에 하릴없이,

죄송하다는 듯이 물이나 잔뜩 끼얹어 줄

뿐이다.

흙 속에 가늘게 뻗은 뿌리들이 제 몫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워. 너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새 출발도 하고, 저런 인간하고 살지도 않았을 텐데... 네가 태어나는 바람에 평생 이 모양으로 살다니’ 라고 자신의 자녀 앞에서 한탄했을 때, 마음이 강한 자녀라면 ‘어머니도 어머니 인생을 사세요’ 라며 어머니의 ‘정서적 쓰레기통’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녀가 여리고 감수성이 예민한 경우라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머니 인생을 발목 잡았다는 사실에 슬프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갈등하는 부모 사이에서 희생양(scapegoat)이 될 수 있다. 

 

희생양의 유형으로 ‘부모의 부모, 부모의 친구, 어머니나 아버지의 우상, 가족 내 평화주의자. 가족 상담사, 완벽한 아이, 성자, 운동선수, 가족 중재자, 어머니나 아버지의 배우자, 악당, 광대, 실패자, 문제아, 귀염둥이, 순교자’ 등의 역할을 떠맡게 된다고 보았다((John Bradshaw, 1990). 이 중 가장 대표적인 희생양은 ‘문제아’로 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문제아가 된 자녀는 문제행동을 통해 가족 안에 내재 된 긴장, 불안, 극도의 부정적인 감정 등을 표현한다. 자녀의 문제행동은 자녀를 혼내거나 책망하거나 비난을 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자신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녀에게 쏟아붓게 되어, 자녀의 문제행동은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문제아는 나쁜 짓을 함으로써 가족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게 만들어 가족의 결속을 유지 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툰” 부부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아이가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부부간의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아이를 위해서’ 라며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사랑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주기도 한다. 그중 가장 상처가 되는 것은 차별이다. 여러 아이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 또는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자녀를 한 명 선택해서 사랑을 주거나 감정을 쏟아 낸다. 자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더 사랑을 주거나 더 미워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녀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과하게 사랑받은 자녀는 부모에게 미분화되어 상처를 받는다. ‘부부 사이의 가치관 충돌, 힘겨루기, 가족에 대한 신화, 부부간의 공평성, 부부간의 의사소통, 부부체계의 패턴’ 등이 지속적으로 악순환되면서, 자녀는 부모 중 어느 한쪽과 결탁하여 희생양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야 가족이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그런 방식으로 살기를 원할까? 

 

희생양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 양상은 ‘영웅’ 역할 수행이다. 자녀가 부모 대신 부모의 오랜 소원을 '위임(delegation)' 받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부모는 돌봄과 사랑에 보답하려는 자녀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이루지 못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예컨대, 의사, 법관, 교수, 성직자, 스포츠 스타가 되어 부모의 꿈을 이루어주고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자녀는 ‘하나의 사명을 안고 파견되는 사절단처럼’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를 떠맡는다. 이런 희생양 자녀와 부모 사이에는 ‘착취(搾取)’ 관계가 존재한다. 자녀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빼앗긴 채, 성취는 부모를 위한 것일 뿐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다. 

 

'희생양이 된 자녀는 대부분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의 갈등상태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예민하다. 부모의 고통에 과도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족의 조화를 갈구하는 아이인 경우가 많다. 가족 희생양이 된 아이는 그 가족의 역기능을 대신하고, 가족이 지닌 문제를 짊어진다. 자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부부들은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희생양이 된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고, 폭력을 가하고, 희생을 강요하면서, 감정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던진다. ‘문제아 뒤에 문제의 가족이 있다’. “흙 속에 가늘게 뻗은 뿌리들이” “제 몫을” 할 때, 줄기도 이파리도 꽃도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