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호루라기의 장난 / 박남수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4/11 [10:43]

[이 아침의 시] 호루라기의 장난 / 박남수

서대선 | 입력 : 2022/04/11 [10:43]

호루라기의 장난

 

1

호루라기는, 가끔 

나의 걸음을 멈춘다.

호루라기는, 가끔

권력이 되어

나의 걸음을 멈추는

어쩔 수 없는 폭군이 된다.

 

2

호루라기가 들린다.

찔금 발걸음이 굳어져,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번에는 그 권력이 없었다.

다만 예닐곱 살의 동심이

뛰놀고 있을 뿐이었다.

속는 일이 이렇게 통쾌하기는

처음 되는 일이다.

 

# “호루라기”가 울리자 일곱 명의 자녀들이 이 층에서 우르르 달려 내려와 호루라기를 손에 든 아버지 앞에 일렬횡대로 섰다. 아이들이 한 명씩 새로 온 가정교사 앞으로 나서며, 마치 군대에서 관등성명을 대듯 자신을 소개했다. 가정교사로 온 견습 수녀 마리아가 호루라기 소리로 아이들을 통제하며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던 폰 트랩 대령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한 장면이 호루라기만 보면 생각나곤 했다.

 

권력을 호출하는 도구로 "호루라기”가 쓰인 유명한 장면은 아마도 루쉰(魯迅)의 ‘호루라기를 부는 莊子’ 이야기가 아닐까? 약 오백 년 만에 되살아난 사내는 자신의 보따리와 우산이 없어졌고, 심지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인 걸 알아챈다. 장자를 만난 사내가 장자의 옷이라도 벗겨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그러자 장자는 ‘옷이란 본래 내 것이랄 것도 없는 법’ 이라면서도, 초 왕을 알현하러 가는 길이라 사내에게 벗어 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래도 알몸인 사내가 달려들자, 장자는 “호루라기”를 꺼내 세 번을 분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순경이 출동하고, 장자가 치위안의 관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장자를 깍듯이 대한다. 순경은 알몸인 사내에게 시끄럽다며 더 이상 귀찮게 하면 끌고 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사내가 이번엔 순경에게 달려들자 순경은 장자처럼 호루라기를 ‘미친 듯이’ 불어 댄다. 이렇게 호루라기로 호출되었던 권력은 아마도 벌거벗은 사내의 사정을 들어주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 사내를 ‘진압’하는 권력으로 쓰였음을 고발하고 있다.  

 

“호루라기”가 막강한 힘을 지닌 또 다른 모습은 스포츠 경기이다. 국제경기에서 사용하는 스포츠용 호루라기는 경기 중 심판이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컨대, 축구 경기에서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 이의를 달 수 없다. 유년 시절, 만국기가 휘날리던 운동장에서 달리기 결승선을 노려보며 귀를 기울이던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도 막강한 힘을 지녔었다. 

 

“호루라기”에 관한 또 다른 일화로는 18세기 미국을 건국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정치가, 문필가, 외교관, 발명가, 출판인으로 유명했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호루라기”이다. 가난했던 프랭클린이 7살이던 어느 날, 그는 용돈으로 갖고 싶었던 호루라기를 샀다. 그러나 4배나 비싸게 산 것을 알게 된 프랭클린은 분하고 억울하여 엉엉 울었지만, 그 후 그는 그 일을 잊지 않았고, 모든 일에서 절제하고 정당한 값을 지불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보다 비싼 값을 치르거나 핵심이 아닌 주변 것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 당신은 호루라기 값을 너무 많이 지불 하는(pay too much for the whistle) 불쌍한 사람이구나’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호루라기”는 호신용과 양심의 ‘호루라기 불기(whistle-blower)’로도 사용된다. 호신용 호루라기는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폭력, 유괴 등의 흉악범죄를 예방하고, 야간 편의점이나 여성 일인 업소 등에서 심야 시간에 발생할 수 있는 절도나 폭력과 같은 강력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 지킴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활용된다. 특히 ‘내부 고발자’의 ‘호루라기 불기(whistle-blower)’ 제도는 양심에 따라 국가와 공익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제도이다. 공익신고자의 ‘호루라기 불기’는 사회 각 부문에서 은밀하고도 지능화되어가는 불법, 편법, 비리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이런 제도가 활성화되고 올바르게 정착될 때, 부정부패가 줄어드는 사회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호루라기가 들린다.” “찔금 발걸음이 굳어져” 긴장하며 뒤돌아보는 호루라기 소리가 아니라 “다만 예닐곱 살의 동심이/뛰놀고 있을 뿐”인 날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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