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 / 박재삼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3/14 [09:02]

[이 아침의 시]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 / 박재삼

서대선 | 입력 : 2022/03/14 [09:02]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 ‘어느 소가 일을 잘하든 그 말을 하는 게 무슨 큰 비밀이라고 이렇게 귀엣말을 하시오?’ 라고 젊은이가 묻자 농부가 답했다. ‘젊은 선비양반, 모르는 말씀 마시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는 것을 알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오’ 세종 시대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黃喜) 정승의 일화다. 젊은 선비 황희가 들판에서 두 마리의 소로 논을 갈고 있던 농부에게 소 두 마리 중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하느냐고 물었을 때, 농부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농부는 황희를 소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간 다음, 귀에 대고 아주 작은 소리로 ‘누렁소가 검둥소 보다 더 일을 잘 한다’ 고 속삭였다. 농부의 말에 크게 깨달은 황희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짐승일지라도 그 앞에서 대놓고 흉보는 일은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새해 벽두부터 “그 무지무지한/추위를 넘기고/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 최근까지 일부 언론 매체와 SNS, 유튜브 등에서는 연일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말들이 바이러스처럼 일상생활을 덮쳤다. 마치 입만 달린 괴물들이 헬게이트가 되어 우리를 삼키려는 것 같았다.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뭐라고 말을” 중언부언 하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고 시인은 반문한다. 아이들이 들을까 걱정되는 욕들과 저주, 거짓말과 마타도어, 증오에 가득 찬 갈라치기, 이간질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말들이 칼이 되어 상대를 베고, 화살이 되어 상대의 심장을 겨누고, 독이 되어 사람들을 중독시키려는 것 같은 힘든 시간을 건넜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기법으로 해학적이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멋진 비유를 사용하여 상대와 선전(善戰)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문학적 전통 속에서 지켜야 할 덕목으로 꼽힌다. 어떤 시인이 슬프다고 자신의 글 속에 '슬프다‘라고 하소연하면, 그건 넋두리일 뿐이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절제하여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행간에 감추어둔 뜻을 독자가 읽어내고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두보와 이구년은 당나라 귀족이었던 기왕(岐王)과 최구(崔九)가 여는 잔치에 초대받던 명사였으나, 안녹산의 난 이후 두 사람은 각자 피난민 신세가 되어 낯선 지역 낯선 거리를 떠돌게 되었다. 두보가 ‘서남의 천지 사이를 떠돌며(漂泊西南天地間)’ 지내다 강남땅에 도착했을 때, 장안 시절 알았던 유명 가수 이구년이 생계를 위해 거리의 악사로 전락하여 떠도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두보는 이때의 서글픈 감정을 절제하고, ‘강남봉이구년(江南蓬李龜年)’이란 시 속에서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다시 만났네(落花時節又蓬君)’ 라고 전언함으로써, 두 사람이 강남땅에서 만난 때가 ‘낙화시절’이고, 두 사람의 삶도 ‘낙화시절’을 맞았으며, 그 풍요롭던 당나라도 ‘낙화시절’이 되고 말았다는 중첩된 의미를 전언함으로써 한 줄의 시 속에 계절도 인생살이도 정치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운행을 거친다는 것을  노래했다. 

 

지금 우리가 지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 운행 중 서로 중첩되는 부분에서 만난 짧고도 소중한 인연이다. 그 짧은 시간에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시간도 부족하건만, 증오하고 저주하고 험한 욕으로 타인을 대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자신이 내뱉는 저주와 증오와 욕들은 상대의 귀에 도달하기 전, 먼저 자신의 뇌 속에 뇌색임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내뱉는 험한 말들이 모두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황희 정승이 만난 농부는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조차도 자기를 욕하고 흉보는 것을 싫어하고, 흉보거나 욕을 듣게 되면 기분도 상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전언한다. 축생 앞에서도 말을 삼가던 농부에게서 배운다.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그것을 그냥/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이 엄청난 비밀을/곰곰이 느껴보”는 시간을 갖으면 어떨까. 만물이 다시 시작하는 봄이지 않은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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