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내려놓는다 / 이영광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2/27 [22:47]

[이 아침의 시] 내려놓는다 / 이영광

서대선 | 입력 : 2022/02/27 [22:47]

내려놓는다

 

역도 선수는 든다

비장하고 괴로운 얼굴로

숨을 끊고,

일단은 들어야 하지만

불끈, 들어올린 다음 부들부들

부동자세로 버티는 건

선수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희한하게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이 없다

모든 역도 선수들은 현명하다

내려놓는다

제 몸의 몇배나 되는 무게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텅!

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다

저렇게 환한 얼굴로

 

# “텅! /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 아저씨가 마치 “역도 선수” 같다. 봄맞이 청소를 하려 인력 사무소에서 아저씨 두 분의 도움을 청했다. 지난가을 나무들이 “내려놓은” 낙엽들이 비와 바람과 폭설에 이리저리 뭉쳐서 굴러다니다 집 주변 수로와 둔덕 수로를 막기도 하고, 쓰레기처럼 둔덕에 쌓여 있었다. 갈퀴로 낙엽을 모아 커다란 비닐 자루에 넣어 일 이년 묵히면 훌륭한 천연비료로 변신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엽토는 다시 텃밭으로 돌아가 일용할 먹거리들을 키워내는 순환을 거친다.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아저씨들이 낙엽 가득 든 비닐 자루를 “불끈, 들어올리”더니 둔덕 골짜기 한쪽으로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다”. 

 

나무들은 무조건 움켜쥐거나 강박적으로 저장(hoarding)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때가 되면 “내려놓는다”. 그래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늦가을이 되면, 봄에서 여름까지 제 몸을 먹이던 이파리조차도 과감하게 지상으로 “내려놓는다”.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이 없다”. 자연은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떤 집에서 모아둔 잡동사니가 몇 톤씩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는 날은 마음이 뜨끔해진다. 혹시 나도 애착하는 것들을 여전히 “부들부들” 떨면서 움켜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저장강박증’이란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저장하는 강박증이다. 그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두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한 채 무조건 저장해 두지 않으면, 몹시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뇌의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의사결정 능력이나 행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능력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호딩(hoarding)이라 하고,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호더(horder)라고 한다. 물질주의자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성공과 부를 과시하는 징표로 사용하는 반면에,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은 개인의 내면적인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으고 저장한다.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성장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충분하게 받지 못했을 경우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쏟는 것이라고 보았다.  

 

‘호딩(hoarding)’ 행동이 어디 물질에만 국한되랴. 편견, 고정관념, 왜곡된 신념 등을 정신 의 창고 속에 가득 저장해 두고, 자신만의 윤리적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며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장하고 괴로운 얼굴로” “부들부들” 떨어가며, “부동자세로 버틴”다. 시인은 “힘이 남아돌아도 절대로 더 버티는 법” 없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텅!/그것 참, 후련하게 잘 내려놓는” “역도 선수들”의 경기 운영에서 “내려놓을” 줄 알아야 다시 “들어올릴”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언한다. 집 주변과 둔덕 수로의 물길을 터주고, 나무가 ”내려놓았”던 낙엽을 쓸어 모아 퇴비를 만들고, 꽃망울 하나둘 터지는 생강나무에 기대어 나무의 말씀을 듣는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