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하쿠나 마타타 / 여태천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2/14 [10:17]

[이 아침의 시] 하쿠나 마타타 / 여태천

서대선 | 입력 : 2022/02/14 [10:17]

하쿠나 마타타

 

어느 날 문득 옆집 사는 사람이

손을 잡고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사람이

스와힐리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어느 날 문득, 뉴스 진행자가

화면 밖으로 기어 나와 고해성사를 하는 것

처럼

하나마나한 소리로

어느 날 문득

외계 생물체가 되어

지구에 도착해

부패한 정치에 분통을 터뜨리며

명절날 전을 부치며

 

허구헌 날 빈속에다 뭔가를 쑤셔 넣으며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반

복하며

돌아갈 날을 기다리자

 

하염없이

방아를 찧고 또 찧고

그 힘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거라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어느 날 문득

외계생물체로 남아

생을 마감하지

눈 내리는 산과 비온 뒤 돋는 들판의 풀들을

보지도 못하고

 

*Hakuna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문제없다’란 뜻이다 

  

# ‘걱정 하지 마, 다 잘 될 꺼야’ 심한 충격으로 웅크려 있던 삽살개 블루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다. 삽살개 블루의 안온했던 일상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가 일어났다. 늦가을 아침,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목줄을 풀어 주자 신이 난 블루는 마당을 돌면서 연못 속 붕어도 만나고, 구절초 향기도 맡고, 김장 담고 남은 무와 무청들을 갈무리하는 아래 텃밭에 내려와 어슬렁거리기도 하였다. 빨래를 널려고 집 뒤 둔덕으로 가면 어디선가 뛰어와 주변을 맴돌았던 삽살개 블루가 보이지 않았다. ‘블루야 ̴’ 서너 번 불렀지만 달려오지 않았고, 집 주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도 출연했던 순종 삽살개 블루를 분양받은 아들이 마당 넓은 시골이 더 좋을 거라며 맡겼다. 생후 일 년을 조금 넘긴 삽살개는 쉽게 시골 생활에 적응했다. 약간의 교육을 받았던 삽살개 블루는 품위 있고 똑똑했다. 목줄을 풀어 주어 마당과 집 주변 둔덕을 달리거나 탐색할 수 있었던 블루는 가시거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부르면 곧장 달려왔다. 암컷 삽살개를 맞아들여 새끼도 낳아 기르던 삽살개 가족은 시골 삶의 활력을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늦은 오후가 되어도 블루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걱정되어 뒷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블루를 불렀다. 어디에도 삽살개 블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마을 골목마다 블루 이름을 불렀다. 다시 뒷산을 오르내리며 외쳐 불렀으나 허탕을 쳤다. 똑똑해서 절대로 다른 사람을 따라갔을 리는 없다고 고개를 저어보기도 하고, 혹시 개 도둑에게 잡혀간 것은 아닌가 하는 흉한 생각도 들었다. 하루만 더 기다려 보고, 119에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올가미에 걸렸던 왼쪽 발목이 뼈가 다 들어난 상태로 절룩거리며 돌아온 블루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왼쪽 발목을 절단하고 퇴원한 삽살개 블루는 올가미에 걸려 몸부림쳤던 충격으로 집 안에 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간 중에도 못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당한 재앙 앞에서 의기소침해 있는 블루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걷게 하려고, 아침마다 삽살개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걱정하지 마, 문제없어 (하쿠나 마타타). 넌 할 수 있어”를 외쳤다. 며칠이 지나자 블루가 비틀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절뚝거리며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하쿠나 마타타”. 스와힐리어로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꺼야’ 라는 위로의 주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언 킹’에서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라는 말로 더빙되기도 했는데, 낮은 자존감과 사자로서의 정체성조차 형성하지 못했던 아기 사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친구 미어켓이 해주었던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뜻하지 않는 곳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과 재앙에 부딪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재난도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예측하지 못한 재앙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때, 인간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하염없이/방아를 찧고 또 찧”듯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명절날 전을 부치며” “부패한 정치에 분통을 터뜨리며”, “허구헌 날 빈속에다 뭔가를 쑤셔 넣으며/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럴 수가 있나”하는 날들로 지샐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만의 소망을 찾는 것을 두려워했던 아기 사자처럼 ‘소망차단(wish-block)’의 방어기제로 자신을 불신하고 억압하거나,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을 망설이는 ‘결심회피(avoidance of renuciation)'로 무기력해져,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생물체”가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실존적 공허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전언한다. “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우리가 우리 안에 내재된 자유의지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믿는다면, “눈 내리는 산과 비온 뒤 돋는 들판의 풀들을” 볼 수 있는 세상도 있다는 것을....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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