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돌탑 / 이산하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2/03 [06:30]

[이 아침의 시] 돌탑 / 이산하

서대선 | 입력 : 2022/02/03 [06:30]

돌탑

 

절로 가는 오솔길

가파른 모퉁이마다 

돌탑들이 쌓여 있다.

나도 빌어볼 게 많아

돌 하나 얹고 싶지만

하나 더 얹으면

금방 무너질 것 같아

차마 얹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나를 하나 더 탐하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 ‘너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니?’ 이월 초순이면 찾아오는 복수초 꽃을 보려고 둔덕 풀덤불을 헤치니 어디서 굴러 왔는지 아기 주먹만한 돌 하나가 복수초 곁을 지키고 있다. 아마 지난 폭설이 다녀갈 때 흙 속에 숨어 있던 자그만 돌이 지상으로 나온 것이리라. 손안에 쏘옥 들어오는 돌을 쥐어 본다. 차다. 돌의 온도와 내 손의 체온을 나누며, 돌을 쥐었던 손을 펴고 들여다본다. 나보다 오래 이 둔덕에서 살고 있었던 돌은 앞으로도 더 오래 이 둔덕에서 살아갈 것이다. 내 손의 체온이 옮겨 간 자그만 돌을 다시 복수초 가까이 “돌탑”처럼 내려놓고 머지않아 금빛 복수초 꽃들이 둔덕에서 아기 웃음처럼 돋아나면, 겨울을 건너온 모든 생명들이 강건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한다. 

 

“돌탑”은 돌이 지닌 불변성과 주술성을 토대로 가장 원초적인 종교 원리를 이용한 신앙 대상물이다. 돌탑에는 돌 하나마다 간절한 간구와 염원이 들어 있다. 보통 마을 어귀에 세우는 돌탑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신다. ‘할머니 탑’ ‘할아버지 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마치 가정에서 부모가 자손들을 돌보는 든든한 울타리인 것처럼, 마을 어귀에 세워진 ‘탑 할머니 탑 할아버지’는 마을을 수호하는 신령이 되어 마을에 들이닥칠 액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때로 “돌탑”은 풍수상 허(虛)한 방위를 막거나 끊어진 지맥을 연결하기 위해 쌓기도 했다고 한다.

 

돌은 자연계의 모든 물체 중에서 태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여일한 모습으로 불완전한 인간의 허약함을 초월한 어떤 힘을 느끼게 한다. “절로 가는 오솔길/가파른 모퉁이마다 /돌탑들이 쌓여 있”는 모습 속에 말없이 서로의 밑돌이 되어 주고 있는 “돌탑”들을 바라보노라면, 간절한 마음들이 서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시인도 “빌어볼 게 많아/돌 하나 얹고 싶지만/하나 더 얹으면/금방 무너질 것 같아/차마 얹지 못하고/그냥 지나친다.”고 전언한다. 간절한 마음만으로 얼기설기 쌓아놓은 것이기에 기단이 단단한 것도 아니고, 돌탑으로서 형식을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니다. 만약 돌을 잘못 얹다가 돌탑이 흩어지거나 다른 사람이 쌓은 돌이 무너져 내리면, 그 사람의 간절한 소원이 허사가 될 것 같아 시인은 자신의 돌을 얹지 못하고 지나치며 사람들의 소원이 쌓인 “돌탑” 위에 자신의 소원 하나를 더 얹는 것조차도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찍어라./그럼 난/네 도끼날에/향기를 묻혀주마”(나무)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평생 외길로 살아온 시인의 정신은 여전히 청년이지만, 그의 육신은 시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돌탑” 위에 소원을 비는 작은 돌 하나 얹는 것조차 자신을 “하나 더 탐하는 것” 같다며 반성하던 시인을 대신해, 병상에 있는 분들이 추운 겨울 견디고 피어나는 복수초 꽃처럼 강건하게 봄을 맞으시길 기원하며 둔덕 복수초 곁에 작은 돌 하나 “돌탑”을 세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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