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 / 김황흠

서대선 | 기사입력 2022/01/17 [07:01]

[이 아침의 시]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 / 김황흠

서대선 | 입력 : 2022/01/17 [07:01]

책장 사이에 귀뚜라미가 산다

 

벽과 책장 사이에서 열심히 소리를 짓는 것 같은데 형

광등을 켜자 뚝 그친다 스위치를 내리고 다시 잠을 부르

자 먼저 달려오는 소리 내 귀에다 붓는 애절한 노래 엷은

날개로 간절하게 책장 귀퉁이를 매만지는 가을밤

 

무심에 파르라니 떠는 페이지를

어디에 숨어서 읽고 있나

 

# “엷은/날개로 간절하게 책장 귀퉁이를 매만지”며, “벽과 책장 사이” “어디에 숨어서 읽고 있”는 “귀뚜라미”가 부럽게 느껴지다니. 지난가을 건강검진 결과 안과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결과지를 들고 종합병원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최근 들어 부쩍 눈물이 자주 나고, 글자들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책을 보다 고개를 들거나 옆으로 돌리면 심한 현기증까지 수반 되었다. 정밀검사 결과 눈의 안쪽 시신경이 가늘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눈을 혹사하면 녹내장으로 진전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듣고 나오면서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 같은 마음으로 비틀거렸다.  

 

초가을부터 어디론가 들어와 집안 벽장이나 책장 사이에 자릴 잡은 귀뚜라미는 마루를 깡충깡충 뛰어다니기도 한다.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우면 “열심히 소리를 지으며” 잠을 깨우고, 머리맡 등을 켜면 “뚝 그친다”. 불을 끄고, “다시 잠을 부르/자 먼저 달려오는 소리 내 귀에다 붓는 애절한 노래”에 이번엔 내가 귀뚜라미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깊이 잠들기는 틀린 가을밤,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따스한 차 한 잔을 준비한다. 거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상현달이 마당을 건너고 있다.

 

보랏빛 쑥부쟁이와 구절초 사이로 벌과 나비가 장날처럼 바쁘게 드나들고, 연못가에 핀 다알리아와 국화, 꽃무릇과 도라지 꽃들이 어우러져 소근 거리고, 연못 위를 스쳐 나르는 파르스름한 실잠자리를 본 친구는 환한 얼굴로 자기도 시골에 내려와 살고 싶다며 한숨을 쉰다. 그 친구 마음에 초를 치는 것 같아도 조근 조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시골 생활을 알려 준다. ‘더불어 함께 살 수 있어야 해. 거미, 뱀, 지렁이, 철 따라 찾아오는 곤충들과 벌레들...’ 그뿐 아니라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귀뚜라미가 찾아와 밤마다 또르륵 또르륵 울어대면 불면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귀띔해준다. 벌레와 곤충을 아주 무서워하는 친구는 한걸음 물러서는 표정이다. 

 

도시 생활이나 시골 생활이나 모두 보기 좋은 앞의 생활이 있는가 하면, 참아내고 견디어야 하는 불편하고 힘든 이면의 생활도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을 선택하느냐 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곳이든 함께 살아내야 하는 모든 생명들과 균형을 맞추고 협동하고 하모니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를 깊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드물강 근처에서 사는 김 시인은 가을이 되면 찾아오는 “귀뚜라미”를 귀하게 여긴다. “벽과 책장 사이에서 열심히 소리를 짓는 것”을 불편하거나 귀찮게 여기기보다는 한밤중에도 깨어서 “무심에 파르라니 떠는 페이지를/어디에 숨어서 읽고 있”는 독서 마니아로 생각한다. 젊은 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보면, 어느새 창문에 희부연 새벽이 다가와 있을 때 느끼던 충만감을 생각나게 한다. 이제는 한 시간 책을 보면 삼십 분 이상 눈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보니, 밤새 “엷은 날개로 간절하게” 책 페이지를 넘기는 “귀뚜라미”가 부럽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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