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찍힌 나무 / 서경온

서대선 | 기사입력 2021/11/22 [09:59]

[이 아침의 시] 찍힌 나무 / 서경온

서대선 | 입력 : 2021/11/22 [09:59]

찍힌 나무

 

두서너 번 도끼날에

찍힌 나무는

차라리 넘어지기를 원한다

 

어린 나무들처럼 단번에 쓰러져서

단순한 슬픔, 단조로운 아픔 속에

두 발을 뻗고 드러눕고 싶어 한다

 

다친 자리마다 부풀어 오른 각질

엉거주춤 가리고 서면

이제쯤 오히려 그리운 것은

빛나는 도끼날의 허이연 웃음

 

두서너 번 도끼날에 찍힌

해묵은 나무는

차라리 넘어지기를 원한다

옆구리를 상하고도 드러눕지 못하고서

부질없이 피워대는 푸르고 붉은 잎새

 

제 슬픔을 전부 가리지 못해

찡그린 얼굴이 어여뿐 하얀 나무. 

 

# ‘아유, 고마워라. 꽃을 보여주네’ 두 해 전, 폭설에 수명이 다해가던 “해묵은 나무” 둥치가 부러져 바로 아래 둔덕에서 자라던 어린 자두나무를 덮치면서, 자두나무 허리가 반쪽으로 꺾어졌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기억자로 꺾어진 자두나무 가지를 쳐내지 못했다. 봄이 되어도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었는지, 마치 죽은 나무처럼 나무 색깔조차 거무스레한 채 이파리 하나 피워 올리지 못했다. 너무도 갑자기 닥친 재난에 허리가 꺾였기에 “두 발을 뻗고 드러눕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하여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뿌리의 힘을 믿는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두 해째 되던 봄날, 허리가 부러진 자두나무 뿌리 가까운 조그만 가지에서 보오얀 자두 꽃 두어 송이를 피워 올렸다. 봄 햇살 아래서 “제 슬픔을 전부 가리지 못해/찡그린 얼굴이 어여뿐” 모습을 마주하자 마음이 뭉클했다. 허리를 상하고도 “드러눕지도 못한” 채 홀로 상처를 견디고, 두 번째 봄날이 되어서야 꽃을 피운 것이다. “부질없이 피워대는 푸르고 붉은 잎새”라고 안쓰러워하는 시인의 생각처럼 저리 커다란 상처를 입은 나무도 그리 생각할까? 

 

지상에 현존하는 생명체 속에 장착된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시인이 안쓰러워하는 생각에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 것이다. 나무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남은 생명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 올려 꽃을 피운다.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키려는 이기적 유전자의 엄숙한 명령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는 보았다. 그는 ‘생물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이며, 생물들은 모두 유전자의 자가 복제 속에서 만들어진 기계적 존재’이기에 “차라리 넘어지기를 원”하는 “두서너 번 도끼날에/찍힌 나무”라 할지라도 “다친 자리마다 부풀어 오른 각질/엉거주춤 가리고” 서서, “푸르고 붉은 잎새” 힘겹게 피워 올리며, 자신의 유전자를 지상에 남기려 한다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들이닥친 자연재해나 코로나와 같은 팬대믹, 전쟁 등이 “도끼”가 되어 우리 삶의 허리를 깊이 찍어 대기도 한다. “두서너 번 도끼날에” 찍혀 삶의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되면 차라리 “두 발을 뻗고 드러눕고 싶고”, 모든 걸 포기한 채 그대로 잠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의 강력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말은 자신의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행동하고 삶을 이어가라는 뜻이다. 자연재해로 자칫 세상을 뜰 뻔했던 어린 자두나무도 자신의 생 앞에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웠다. 우리 인간은 이억 분의 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세상살이 구비 마다 숨어있는 날선 도끼들이 우리 삶의 허리를 노릴지라도 세상에 태어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생에 대한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를 잃지 말아야 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