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영상]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진위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1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21/03/24 [20:20]

[MJ영상] 고려금속활자(증도가자) 진위논쟁, 무엇이 문제인가? 1

박명섭 기자 | 입력 : 2021/03/24 [20:20]

세계최고 금속활자 발견은 문화국위를 획기적으로 선양할 수 있는 세계사적 사안입니다. 이에 본지는‘역사적 진실을 밝힌다.’는 사명감에 입각하여 지난 1월부터 [세계최고 금속활자(?)‘증도가자’진위논쟁...무엇이 문제인가?] 란 연중 특집 기획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3일 증도가자 발견자인  남권희 교수의 대구시 중구 동덕로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를 발견한 경위 및 현재까지의 과정 등을 총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남권희 교수가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를 발견(주장)하여 현재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도 험난하였으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현재진행형 상황입니다.

 

남 교수는 2004년 처음으로 고려금속활자를 접하였으며, 처음에는 위작일 것으로 추정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2003년 청주고인쇄박물관의 요청으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복원을 위한 기초 조사 연구를 총괄하면서 확인한 증도가 서책(번각본)에 수록되어 있는 전체 글자 9,344자의 자별 대조분석의 결과와 고려금속활자의 (서체)유사도가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되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연구는 2010년 여름경이 되어서야 활자와 활자본을 저본으로 한 번각본의 차이 등을 고려하면 금속활자와 번각본의 서체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판단하여 2010년 9월 1일 증도가자 발견을 알린 것입니다.

 

세계 최고(最高)의 금속활자(古) 발견이라는 고려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주장은 세계 활자(인쇄)역사를 다시 쓰게 되는 세계사적 사건입니다. 그럼으로 진위규명 등에 초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이에 진위에 대한 각종 주장들이 난무하면서 험난한 검증 과정 등이 예고되어 졌습니다.

 

증도가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워짐에 따라 2014년 6월 증도가자 기초학술팀(일명 남권희 팀)이 발족하여 33명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고려시대에 주조되고 일부 사용되었던 활자임을 확인하였다(진품)”는 취지의 661페이지 최종결과보고서가 작성·발표되었으나, ‘믿지 못하겠다.’면서 지정조사를 의결했습니다. 이후 기초연구를 비토하는 재검증 등, 치열한 정쟁처럼 진행되었습니다.

 

2010년 9월 1일 증도가자 주장(발견)이후 검증·재검증 등, 7년의 세월을 거쳐 2017년 4월 13일 관계당국(문화재청)은 과학감정 결과 특이점(위조흔적) 등은 발견치 못하였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서체비교, 주조 및 조판실험의 결과와 출처와 소장경위 불분명 등을 이유로 ‘보물 지정가치 없다’면서 지정을 부결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초학술조사팀을 총괄한 남권희 교수는 “탄소연대측정 결과 활자에 뭍은 먹의 연대 모두 고려시대(또는 이전)이고, 파괴분석까지 포함한 치밀하였던 전 방위적 과학감정에서도 위조흔적 등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더하여 증도가 번각본(1239년)이 발간되기 전후한 시점에서 이미 수 만자 이상의 금속활자 제작이 증명되어진 상황(증도가자 발문 및 동국이상국집의 상정예문 활자 기록 등)에서 활자(또는 활자본)과 번각본의 수축률 차이 등을 고려한다면 일반인 누가 보다도 금속활자와 증도가 번각본의 서체도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가짜몰이 거대파동을 일으킨 것으로 인식되는 국과수에서의 서체분석은 왜 일입니까? 더하여, 기록조차 전혀 없고 연구영역에 불과하며, 더더욱 편의적이기까지 한 주조·조판의 일방적인 실험결과를 근거로 마치 위조활자의 뉘앙스를 풍기는 듯한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발표해도 되는 것입니까! 절대적 증거인 탄소연대, 과학감정 모두 고려시대로 완벽한데, 아무런 근거조차 없는 비약적 추측, 억측 등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을 이렇게 뭉갤 수 있는 것입니까...?”면서 인터뷰 시간 내내 격정토로 했습니다.

 

더하여, “우리 기초학술조사팀은 2014년 6월부터 6개월간에 걸쳐 33명의 학자들이 그간 발표된 37편의 단행본과 122편의 논문들을 모두 섭렵해 가면서 탄소연대측정 등 각종 과학감정 및 서체분석(주조·조판연구 및 실험은 제외 요청) 등에 따른 600여 페이지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였으나 이해관계(?) 등으로 부정되면서, 금속활자 분야에 대해 제대로 된 논문하나 발표한 적이 없는 12명의 비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기초학술조사를 (재)검증하는 지정조사단이 구성되었습니다.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검증하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 등을 우려하여 지정조사단과의 교차검증이나 끝장 토론을 수차 요청하였으나 묵살 당했습니다. 연대는 고려시대이고 위조흔적 전혀 없고, 특히 위조글씨나 활자 등이 나올 시대도 전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함부로 위조뉘앙스를 풍기면서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차검증이나 끝장토론이 성사되었다면 최소한 이런 희한한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국회에서조차 ‘정치하는 것이냐’면서 힐책한 것입니다.”면서 회한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남권희 교수는 3시간에 걸친 인터뷰 시간동안 내내, “고려금속활자(일명‘증도가자’)를 발견한 과정과 이를 알리게 된 경위 및 공론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 등과, 관계당국(문화재청)의 ‘고려시대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지정)부결에 대한 격렬한 소회 등을 밝히면서, 특히 국과수, 언론 등의 가짜몰이, 심사위원 8명중 3명의 지정조사단 참여 등, 왜곡되고 편향적인 심사위원(동산문화재위원) 구성에 더하여 학계 및 문화재업계의 고질적인 파벌다툼까지 총합적으로 어우러져 위대한 문화유산이 역사의 언덕 너머로 뭍일 위기에 처해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라고 토로했다. 더하여, “이래서는 안 됩니다.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진실규명을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임을 알리면서 비장한 결심을 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계속)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 영상취재·편집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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