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나무 / 이기철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3/22 [09:30]

[이 아침의 시] 나무 / 이기철

서대선 | 입력 : 2021/03/22 [09:30]

 

나무

 

너 살아있었구나

봄나무여

나 너와 함께 이 땅에서 오래 참으리라

 

 

# ‘보세요. 여기 능소화와 목련은 서로 친하지 않아요.’ 늦가을 나무들을 전지해 주려 살피다 마당 한쪽에서 마치 게의 집게발 모습으로 능소화를 위협하듯 구부러진 굵은 목련나무 가지를 발견했다. 나무들 사이에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생존을 위해 다른 종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는다. 그러나 서로 친하게 지내는 나무들은 절대로 저런 위협적인 가지는 만들지 않는다. 가지를 뻗어도 상대 나무가 햇빛을 잘 받고 바람이 선선히 통과하는 지점에서 가지의 경계를 짓는다. 목련이 능소화에게 저리 위협적인 가지를 내밀어 갑질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생각한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집 뒷산에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나무들이 서로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참나무 동네에는 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들이 서로 이웃하여 살기에 키가 작거나 꽃을 피우는 나무는 잘 살지 못한다. 그것도 모르고 굴참나무 아래 탁자와 의자를 놓고 그 주변에 영산홍을 심었는데, 결국 꽃을 피우지 못했고 고사하거나 성장을 멈춘 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참나무 군락지처럼 오랜 시간을 거치며 자연 생태계의 숲을 이룬 나무들은 협동과 연대라는 생존전략으로 살아남은 종이다. 뿌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할 경우 서로 돌보아 주고, 위험을 경고해 주며, 아프거나 굶주릴 때 먹이를 나누어 준다고 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적으로부터 혼자 방어하려 할 때 들어갈 많은 에너지를 아껴 목질과 잎, 열매의 성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무의 생존전략 중 가장 큰 덕목은 ‘느리게 사는’ 것이다. 어린나무들에 대한 교육은 ‘인내와 절제’를 통한 ‘느리게 살기’ 스파르타식의 교육이 전수된다고 한다. 어린 나무에게 광합성 할 수 있는 햇빛을 약 3% 정도만 제공하여,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생존환경 아래서 느리게 성장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어린나무의 내부 세포는 영양부족으로 크기도 아주 작고 공기함량도 적지만, 목질은 치밀해지고 탄성이 뛰어나 어떤 자연재해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게 된다. 또한 치밀한 세포를 가진 덕에 곰팡이나 세균이 함부로 침투하기 어렵고 혹여 상처를 입어도 쉽게 아물게 된다는 것이다. 나무들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하고 나무를 심었을 때, 능소화처럼 목련에게 위협받을 수도 있고, 참나무 군락 속에서 영산홍처럼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빈 공터에서 저 혼자 크다가 나무 속 세포가 엉성해져 자연재해에 쓰러지거나, 곰팡이나 세균의 침입으로 쉽게 병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른 봄 뒷산에서 앙상한 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껍질을 벗겨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 스스로 한파와 폭설도 이겨내고, 세균과 곰팡이의 침략도 물리치고, 목마르고 배고픈 시간들도 인내한 채 새로운 봄을 맞이한 나무는 자신의 시간이 되면 눈물겨운 새싹을 내미는 것이다. 나무의 성장 과정을 잘 아는 시인은 전언한다. “너 살아있었구나/봄나무여/나 너와 함께 이 땅에서 오래 참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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