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이웃 / 김형영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3/08 [08:17]

[이 아침의 시] 이웃 / 김형영

서대선 | 입력 : 2021/03/08 [08:17]

이웃

 

누가 네 이웃이냐고 묻지마라

나도 네 이웃이 아니냐

 

# “누가 네 이웃”인가를 궁금해하기보다는 ‘어떤 이웃’이 당신 가까이에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서너 마리 함께 삶으면 먹을 수 있겠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말티즈를 바라보는 앞집 아저씨 눈빛에 나의 전원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란 경고등이 켜졌다. 집을 지으며 이웃과 사회적 거리의 괴리감을 줄이려 대문을 세우는 대신, 나무 기둥 하나를 경계에 박고 문패를 달았는데, 삶의 방식이 달랐던 이웃들의 행동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자기 집 마당이 패였다고 흙을 퍼가던 이웃, 텃밭에 그늘진다고 수십 년 된 나무를 제 맘대로 잘라버린 이웃, 복날이면 자신이 키우던 개 뼈를 텃밭에 버리던 이웃, 둔덕 울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와선 두리번거리고, 도토리와 밤을 마구 주어가 겨울마다 산 속 식구들을 위해 감자, 고구마, 보리쌀, 말린 시래기 등을 준비하게 했던 이웃, 약수 받듯 마당의 물을 받아가는 이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사유지인 집 뒷산에 들어와 술판을 벌리는 데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아무데나 버린 담배꽁초로 산불이 날까 봐 전전긍긍하자, 오히려 까칠한 이웃이라는 뒷담화까지 들었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내게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시로 드나들었던 마을 끝 산자락에 마을 사람들과는 사회적 거리가 먼 사람이 집을 지었던 것이다. 깊은 산속 암자 생활처럼 고요하게 살고 싶었기에 심리적 거리의 경계를 쉽게 허물지 못했으니, 자신들의 생활 패턴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웃을 만나 당황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이웃들은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고 선량하다. 마을 행사에 참여하고 명절날 따스한 마음도 나누며 조금씩 이웃의 삶 속으로 스미는 동안, 이웃들은 텃밭 농사의 지혜를 전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텃밭에서 거둔 시절 야채를 조용히 두고 가기도 하였다. 물받이 통 보수나 막힌 하수도를 고쳐주며, 겨울 나는 지혜도 알려 주었다. 잡초를 제거할 때 선선하게 힘을 보태던 동네 아주머니들, 뒷산 죽은 나무를 고르고 새로운 품종으로 식목하는 데 포크레인으로 꼼꼼하게 정리해주던 동네 청년, 마을 발전을 위해 수시로 의견을 모으는 이장, 새벽마다 올라와 집 주변을 살피고 보살피는 동생, 새집을 올리며 이웃들 차량 소통을 배려하여 울타리를 자신의 마당 안쪽으로 양보한 이웃이 동글동글한 삶의 햇살을 빚는 마을이다.

 

최근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낯선 아이에게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가 고운 마음을 나눈 ‘편의점 천사’, 제 돈으로는 먹을 수 없어 문밖에서 서성이는 형제에게 맛있는 치킨을 건넨 ‘치킨 천사’ 등의 따스한 이웃들이 봄 햇살을 편의점 바구니에, 치킨 상자에 담아 우리 삶 속으로 배달하고 있다. 물청소한 장독대 아래 피어난 민들레를 만난듯하다. “누가 네 이웃이냐고 묻”기 전에 “나도 네 이웃이"기에 내가 먼저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삶의 뒷골목에 남아 있는 흙 묻은 빙판도 녹일 수 있으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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