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코로나 이후 뉴 노멀⑧…‘건배사’의 사회문화사적 의의

박항준기자 | 기사입력 2021/02/17 [11:29]

[박항준 칼럼] 코로나 이후 뉴 노멀⑧…‘건배사’의 사회문화사적 의의

박항준기자 | 입력 : 2021/02/17 [11:29]

[편집자 주] 누림경제발전연구원(원장 박항준 교수)은 다가올 포스트-코로나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철학적, 사회적 가치 기준인 뉴 노멀을 제시하기 위한 칼럼을 기획했다.

 

옛날 공무원을 뽑는 과거시험이나 외교관들은 왜 즉흥시로 답을 했어야 했을까? 즉흥시가 본질을 꿰뚫되(본질을 인지하고 있으되) 상대를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읊을 때도 운율에 따라 감성 어린 목소리로 청자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읊어야 한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만일 술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불만, 사회 부정부패에 대해 혐오를 지금처럼 직설적인 인스턴트 메시지로 전달했다면 아마도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이몽룡이 그 자리에서 목숨이 남아 있었던 이유는 직접적 비난과 비판이 아닌 바로 즉흥시로 상대의 마음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백성들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드높은 곳에 백성들 원망소리도 높구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詩)는 서정시 외에도 희곡, 서사시로 창조된다. 종이가 없었거나 정보의 저장 공간이 귀했던 시절 시(詩)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압축파일이었다. 시(詩)는 에세이, 소설 외에도 청각적 시(詩)인 음악과 시각적 시(詩)인 만화(웹툰)ㆍ그림(조각)ㆍ영화ㆍ애니메이션ㆍ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결국 예술은 예술가의 메시지를 함축한 넓은 의미의 시(詩)라 할 수 있겠다. 시(詩)는 아이콘의 집합체이며 기호들의 역학적 산물이다. 시(詩) 안에 모인 각 요소들 간의 상호 역학관계가 정의되고 여기에 시간적 흐름(Story)이 가해지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시(詩)를 즐겨했던 역사적 습관은 현대에도 남아 있다. 최근 우리가 많이 쓰는 대표적인 시(詩)가 바로 ‘건배사’다. 멋진 건배사를 들어보면 상대가 이해할만한 공통된 주제와 청자들이 감동받을 만한 의미 그리고 풍자와 은유적 표현(위트)으로 구성된다. 건배사는 자체가 곧 즉흥시다. 건배사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 시대에 맞는 압축된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건배사를 갑자기 권유받게 되면 기억이 나지 않고 당황하게 된다. 좋은 건배사 문구는 기억하려 해도 잘 외워지지 않는다. 건배사에도 상황과 본질 그리고 압축률을 높이기 위한 스킬이라는 시(詩)의 특성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참석한 자리와 청중에 대한 이해도가 적으면 멋진 건배사가 탄생하기 어렵다.

 

가르치는(teaching)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정보가 상호 대등한 시대인 ‘대중주도 사회(Crowd-based Society)’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내 지식과 내 경험만으로 네이버ㆍ유튜브를 이길 수 없다. 풍부한 정보가 네트워크 상에 넘쳐난다. 일방적 가르침은 이제는 일몰(日沒)한 정보 비대칭 사회의 잔재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매우 창조적인 지식(Hypertext)만을 생산해 내야 한다. 심지어 아무리 창조적 지식을 생산했다 하더라도 정보력이 대등한 대중(他者)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르침과 명령이 아닌 비유를 통해 인사이트(insight)를 자극하는 ‘즉흥시’가 필요하다. 이 즉흥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로 담론화 과정이다.

 

동양의 고전인 4서(四書) 중 대학(大學)은 이 담론화 과정에 필요한 요소로 ‘상황에 대한 공감’과 ‘타자(他者)와의 교감’ 그리고 ‘창의적인 합의과정’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소통이 되지 않는 다고 비판받는 정치인, 권위가 추락할 때로 추락한 가르치는 이들(교수, 선생, 성직자, 전문가), 가부장적 권위가 없어진 가정(家庭)의 공통점이 있다. 정보 대칭 사회에도 불구하고 담론화 과정을 무시하고 자꾸 가르치려고만 드는데서 나오는 대중(국민, 학생, 자녀)들의 반감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대중주도 사회(Crowd-based Society)’에서는 상대가 아무리 어리고, 약하고, 없어 보여도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가르치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SNS 상에서 팩트를 언급하며 자기 의견을 타자에게 가르치려는 ‘인스턴트 메시지’는 ‘대중주도 사회(Crowd-based Society)’의 최대 적(敵)이다. 현대사회를 지혜롭게 사는 법은 이몽룡처럼‘즉흥시’를 통하여 상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치의 방식도, 교육의 방식도, 가정을 이끄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다시 강조하지만 즉흥시는 상황에 대한 공감능력과 상대와의 교감능력 그리고 창조적인 표현능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건배사를 잘 만드는 이가 ‘대중주도 사회(Crowd-based Society)’를 주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오늘부터 우리도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직접적 비난과 비판이 아닌 ‘1일(日) 1사(건배사乾杯辭)’를 짓는 습관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30초 리더십'의 정성식 저자는 [센스 있는 건배사 멋지게 하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 어차피 차례는 돌아온다. 손을 먼저 들어라. 등 떠밀려서 하는 것보다 멋있어 보인다.

둘. 건배사 하기 전 5초 정도 주변을 둘러보라. 잠시의 침묵은 모두를 집중하게 만든다.

셋. 너무 유식한 표현은 독이 될 수 있다. 좋은 말도 오래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넷. 재미와 감동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면 최고의 건배사다.

다섯. 건배사는 말하지 말고 노래하라. 노래를 부르듯 강약과 장단을 넣어라.

여섯. 모두의 눈을 마주쳐라. 술잔만 마주치지 말고, 눈까지 마주쳐야 한다.

일곱. 건배사는 최대한 30초 만에 끝내라. 오래 끌면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팔도 아프다.

여덟. 좋은 말 한 구절을 인용하라. 내 말은 잘 먹히지 않아도 명언에는 귀 기울인다.

아홉.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듯 마지막에 힘을 주어라. 처음은 부드럽게 나중은 힘차게 끝맺어라.

열. 마무리는 꼭 박수로 끝내라. 나의 건배사를 더욱 빛나게 하고 건강에도 좋다.

 

 박항준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원장

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현 (사)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트벌(sicaf) 집행위원장

현 중기부 액셀러레이터 (주)하이퍼텍스트메이커스 대표이사 

현 (사)한국블럭체인기업진흥협회 상임부회장

현 (사)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부회장

저서: △더마켓TheMarket △스타트업 패러독스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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