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지푸라기 / 정호승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1/25 [09:21]

[이 아침의 시] 지푸라기 / 정호승

서대선 | 입력 : 2021/01/25 [09:21]

지푸라기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 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 “지푸라기” 속에는 유년시절 동네 아저씨들의 얼굴과 마음이 들어 있다. 눈 쌓인 겨울밤 초저녁, 사랑방 댓돌 위에는 신발들이 가득했다. 사랑방 한가운데 쌓아둔 지푸라기 가장자리에 둘러앉은 아저씨들은 지푸라기 서너 개를 집어 한쪽 발로 고인 지푸라기 매듭 사이로 끼워 넣고는 쓰다듬듯 지푸라기를 꼬았다. 입담 구수한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지푸라기 사이사이로 스미는 동안 지푸라기들은 새끼줄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랑방에서 지푸라기들이 새끼줄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큰언니는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큰어머니는 장날 사 오셨던 국수를 삶으셨다. 펄펄 끓는 물 속에 하얀 지푸라기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리던 국수 가락을 커다란 나무 국자로 저어가며 삶아진 국수 위로 얼음이 살짝 아삭거리는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얹고 참기름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려 둘러앉아 먹으면, 지푸라기 같던 마음들이 새끼줄처럼 엮이어 추운 겨울밤도 든든하고 활기찼다.

 

지푸라기 하나의 힘은 얼마나 될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잡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또한 무거운 운 짐을 진 낙타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It'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 힘도 지녔다. 그뿐이랴 지푸라기와 지푸라기가 서로서로 힘을 모아 새끼줄을 만들게 되면 추위를 막아주는 움막도 지을 수 있고, 누구든 들려 대화를 나누고 국수 한 그릇 함께 나누는 멍석도 되고, 텃밭이 주는 열매들을 담는 바구니도 되고, 마을에 새로 태어난 아기의 소식을 알리고 액운도 막아주는 금줄도 될 수 있다. 

 

고달프고 힘든 삶 속에서 자신은 알곡도 다 털리고 “길가에 버려”진 채,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존재라고 한탄하며, 한껏 낮아진 자존감으로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 고 있다면, 시인의 “지푸라기”처럼 자신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갖으면 어떨까. 진흙과 힘을 합치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단단한 흙벽돌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합친다면 새로운 힘과 능력을 지닌 새끼줄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당신이 잡았던 지푸라기처럼, 당신보다 더 슬프고 막막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지푸라기”도 될 수도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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