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롯불을 다독이며…이영춘 시평

이영춘 시집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에 부쳐

서승석 | 기사입력 2020/12/16 [15:12]

화롯불을 다독이며…이영춘 시평

이영춘 시집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에 부쳐

서승석 | 입력 : 2020/12/16 [15:12]

이영춘 시집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에 부쳐

 

마스크를 쓰고 죽음의 그림자와 더불어 유령처럼 부유하며 살아 온 쓸쓸한 2020년의 끝자락에 생의 온기를 북돋아주는 시집을 만났다. 

 

▲ 이영춘 시인  © 서승석


타나토스와 한층 친숙해진 이영춘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는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가이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눈 내리는 겨울밤,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는 자손들을 기다리며 인두로 화롯불을 다독이시던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떠오른다. 시인은 문풍지 우는 소리를 벗 삼아 새빨갛던 잉걸불이 새하얗게 사위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 마지막 온기를 보듬으려 화로를 끌어안는다. 젊은 날의 사랑처럼 그토록 뜨거웠건만 차츰 식어가고야 마는 야속한 것들, 적멸을 향해 소실점으로 아득히 멀어져가는 모든 것들을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보며...... 

 

하늘 꽃송이가 내린다 천사들이 내린다

발 시린 들고양이 들창문에 몸 숨긴다

 

[중략] 

 

눈이 내린다 요정들이 내려오는 소리

세상 소리에 귀 닫은 집

세한도 한 채 홀로 떠있다 (‘눈 내리는 집’ 중에서) 

 

눈 속에 고요히 잠든 외딴 집 한 채가 쉬운 일상어로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그려진다. 들고양이와 삽살 강아지가 인기척에 귀 기울이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어깨 시린 달’이 처마 끝에 걸리는 정경이 서정시의 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눈은 화해이다

나도 내 심장 뒤흔들어 놓고 떠난 사람들과 화해를 할까

 

[중략] 

 

돌아갈 사람

돌아올 사람 지워진 길 위에

지워진 이름 위에

하얀 소식이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눈이 온다’ 중에서) 

 

▲ (왼쪽부터) 시인 이영춘과 서승석 평론가 © 서승석


하얀 눈은 모든 것을 백지화시킨다. “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가 무너져 강물에 기대 울었다”(「물새」)던 시인은, 이 인용시에서 만국기처럼 날리는 새하얀 눈발로 그 슬픔의 근원을 다 지워버리고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고 싶어 한다. 또한 시인은 하루에 세 번씩이나 같은 길을 건너며, 도저히 적응이 잘 안 되는 현대사회에 길들여지려 부단히 노력하나, 그녀에게 삶은 아직도 의문부호뿐이다.  

 

첫 번째 한 번은 누군가가 나에게 변비약을 사 오라 하여

건넜고 두 번째는 나에게 뼈 튼튼해지는 칼슘치즈

와 우유를 사 오라 하여 건넜다 세 번째는 누군가 햇반을 

사 오라 하여 그 길을 또 건너갔다 정확히 근거는 없지만 나

는 의문에 의문을 품으며 그 길을 건너고 또 건넜다 

 

첫 번째는 불통으로 꽉 막힌 세상을 뚫고 싶은 욕망의 약

인가 보다 생각하며 건넜고 두 번째는 골격이 무너져 내리

는 청년들이 혹은 내 집 아이들의 그리고 푸른 황금기를 빗

겨간 내 뼈를 추스르라는 명령으로 그 길을 기꺼이 건너갔

고 세 번째는 밥하는 주부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너도 편승

해 보라는 시대의 명령 같은 내 안의 내가 있어서 그 길을

또 건너갔다 (‘오늘은 같은 길을 세 번 건넜다’ 중에서) 

 

쌀 석 되를 훔쳐서 가출을 하여 부모 몰래 원주여고시험을 응시하고 가난과 봉평을 탈출하였던 소녀는 이제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 평생 제자들을 가르치고, 시인으로서 혼탁한 세상에 빛이 되고자 한다. 괄호 밖으로 튕겨져 나온 소외된 계층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항상 남다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고 한밤중에 신고를 하기도 하고(한밤중에 신고를 하다), 왕따를 당하는 소외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기도 한다(괄호 밖에서). 아직도 “배고파 돌아눕던 동생들의 얼굴들”과 “너희들 배 곯린 것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던 부모님의 “피 토해내시던 말씀”(강가에서 혼자)은 잃어버린 꿈의 조각과 함께 가슴 속에 아리게 파고든다.

      

안개의 도시 춘천에서, 하얀 조팝나무 꽃이 쌀 강냉이처럼 팍팍 피어오르는 강가를 이영춘 시인과 걸어 본 사람은 안다. 배고프던 시절, 시골 마을에 어쩌다 들리는 강냉이 장수가 마술처럼 팡팡 튀겨내던 옥수수 강냉이와 쌀 강냉이 냄새에 취해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즐거웠던 우리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감미로운 아카시아 꽃향기가 미풍에 실려 오는 그녀의 산책길 끄트머리의 나무벤치에 누워 시상을 정리하고 있는 외로운 산책자의 몽상을...... 

 

 

  © 서승석


저 강물에도 욕심이란 게 있을까. 무엇이든 버리고서야 가벼워지는 몸, 가벼워져 흐를 수 있는 몸, 나는 하늘처럼 호수를 다 마시고도 늘 배가 고프다. 셀로판지처럼 반짝이는 물결무늬 끝자락에 눈을 맞추고 오래오래 강가를 서성거린다. 어쩌면 저 물결무늬는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난 이의 눈물이거나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어느 별의 반쪽이거나 오랜 침묵이 눈 뜨고 일어서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 나는 오늘도 싯다르타처럼 강가에 앉아 돌아올 수 없는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물결무늬 결 따라 강 하류에 이르면 누대에 세우지 못한 집 한 채 세우듯 조약돌 울음소리 가득 차 흐르는 강변에서 나는 싯다르타처럼 혼자 가는 법을 배운다. 
바라문을 뛰쳐나온 그의 황량한 발자국에 꾹꾹 찍힌화인 같은,세상 그림자를 지우며 가는 법을 배운다 (‘어느 날 강가에서’ 전문)

 

수면 위에 반짝이는 윤슬에 초점을 맞추고 강가를 서성이며 시인은 욕심을 버리고 세상의 흔적을 지우는 법을 배운다. 영원히 해갈될 수 없는 갈증과 충족될 수 없는 허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녀는 고도를 기다리듯, 오늘도 오지 않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혼자서 길을 간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감히 세상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Exister, c’est oser se jeter dans le monde”라던 시몬느 드 보브와르Simonde de Beauvoir의 말이 요즈음 자주 떠오른다. 마치 눈먼 아버지를 살리고자 효심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심정으로, 아침마다 마스크를 쓰고 전쟁터 같은 세상을 향해 문을 나서며...... 인류는 14세기 페스트 팬데믹 이후 7세기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욕망을 향한 무한질주를 잠시 멈추고 성찰의 시대에 돌입하였다. 공교롭게도 중세의 엄격한 기독교적 통제에서 인간의 욕망을 해방시키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페스트 팬데믹이었고, 그 욕망의 해방은 마침내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탐욕과 광기로 치닫게 되어 결국 우리는 코로나19 재앙을 맞기에 이르렀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빨리 성취하고 더 높이 오르려던 인간의 욕망은 역병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모두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제 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인간이 살 길인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십자군전쟁 이후에 성모마리아가 등장하는 종교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종교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수습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종교적 결속감을 다지기 위하여 모성애적이 사랑을 강조한 푸른 옷을 입은 성화와 성모상이 사랑을 받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어지러운 세상을 감싸줄 모성애적인 사랑이 절실하다. 사회적 폭력과 정치적 혼란과 종교적 광기가 멈추지 않는 세상에서, 시적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은은히 퍼져가는 따뜻한 화롯불의 온기를 전해주는 이영춘 시인에게서, 이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역병이 창궐하는 삭막한 이 세상이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노라고 믿을 수 있도록 인류에게 훈훈한 시적 모닥불을 지펴주기를 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춥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기를 빌며......

 

“난향 천리 예술의 향 구만리”라고 하지 않는가!   

 

서승석 (문학평론가·불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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