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시작은 벼락처럼 온다 / 백인덕

서대선 | 기사입력 2020/11/30 [09:18]

[이 아침의 시] 시작은 벼락처럼 온다 / 백인덕

서대선 | 입력 : 2020/11/30 [09:18]

시작은 벼락처럼 온다

 

담장 밖에서

밖으로만 그림자를 늘이는 나무는 안다.

몇 차례 돌팔매쯤 거뜬히 견디는

키 작은 관목조차 알고 있다.

시간은 철갑(鐵甲)을 둘러주거나 석회질 외투로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 아님을.

 

밀어내는 힘과

억누르는 세상이 만났을 때

축축하고 질긴 외피로 자기 한계를 그을 때

 

금은 이내 상처가 되고

상처는 강이 되어

모든 뜻밖의 저녁 아래로 흐를 뿐이란 걸

 

시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온다.

 

# 한여름 맑은 하늘에서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뭉게구름을 보며 아름답다고만 느꼈다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을 수 있다. 적운(cumulus), 또는 쌘구름으로 불리는 뭉게구름 속에는 작은 물방울뿐만 아니라 얼음과 눈송이가 섞여 있다. 뭉게구름이 발달하여 적란운(積亂雲, cumulonimbus)이 형성되면 번개와 천둥, 벼락이나 우박을 동반하기도 한다.   

 

“벼락”은 구름 밑의 음전기와 땅 위의 양전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방전 현상으로 대지 방전, 또는 낙뢰라고도 한다. 여름철 적란운(積亂雲) 속에는 많은 수분과 얼음 입자가 들어 있고,  이 구름 속 음전기와 양전기 사이에 발생하는 불꽃 현상이 번개(lightning)이며, 폭우가 쏟아져 습기가 많아지면 방전이 일어나 산꼭대기나 능선, 노출된 암벽, 볼록한 지형, 외따로 서 있는 나무 밑, 철책이 가설된 등산로 주변, 평탄한 지형에 설치된 천막이나, 사람이 차고 있는 금목걸이, 금속제 물건 등에 벼락으로 떨어진다. 만약 번개 치는 들판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이 위로 날아오른다면 “벼락”이 당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확률이 높다.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보이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언제부터인가 “밖으로만 그림자를 늘이는 나무”도, “몇 차례 돌팔매쯤 거뜬히 견디는/키 작은 관목조차 알고 있다.” 시간이 “철갑(鐵甲)을 둘러주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숨어 있던 “축축한” 물방울과 얼음과 눈송이가 서걱거리며 미세하게 금을 내며 “벼락”을 만들고 있을 수 있다. “밀어내는 힘과/억누르는 세상이 만났을 때/축축하고 질긴 외피로 자기 한계를 그을 때”, 금 간 상처에선 열역학 제2 법칙이 작동한다. “밀어내는 힘”과 “억누르는 힘” 사이에서 발생한 열은 엔트로피(entropy)를 증가시킨다. 열은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 쪽으로만 이동하기에 두 개의 힘 사이에 생긴 “금”은 “이내 상처가 되고/상처는 강이 되어/모든 뜻밖의 저녁 아래로 흐를 뿐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일어나기에 우리는 이미 발생한 “금”을 되돌아가서 메울 수 없고, 금 간 “상처”를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파멸과 이별의 “시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온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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