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줄들 잘 서라 / 조정권

서대선 | 기사입력 2020/11/09 [09:18]

[이 아침의 시] 줄들 잘 서라 / 조정권

서대선 | 입력 : 2020/11/09 [09:18]

줄들 잘 서라

 

밥이나 먹고 내려가시죠

시창작 강의실에 강사로 온 내가

눈 속에 빠진 바퀴처럼 좀 어리둥절하다

석쇠에 앉은 눈발처럼 학생들이 서넛 앉아

있다

맞고 걸어왔던 눈 여기에 고스란히 쏟아놓으

면 되겠군

‘시 너무 이랬다저랬다 뒤집으면 속까지 탑

니다’

눈 속에 겨울나무들 식판 들고 줄 서 있다 창 

밖에서 벌서고 있다  

식판 위에 눈 소복하다

취사장에서 본, 수백만 개의 고깃덩어리를

구워낸 힘찬 화덕, 햄버거 같은 학생들

눈이 연병장을 쓸고 있다 쓸어도 쓸어도 소

용없는 눈을

‘첼란이란 시인 말야, 식판 들고 저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새치기가 중요한 시절이 아니라

줄에서 다른 줄로 슬쩍 새는 게 중요했지요

살려면 줄에서 빠지는 게 중요했습니다’

자, 오늘은 그만 하고 식당으로 가지

(현금함에다 돈을 넣는다)

자 줄에 붙어, 먹고살려면

요즘엔 굵은 줄에 붙는 게 중요해

 

# “줄들 잘 서”고 있었다. 모처럼 가족과 식당에 갔는데 입구에서 발열체크하고, 방명록에 기록하고, 마스크를 쓴 채 좌석 안내를 기다리는 모습들이 익숙해 보였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줄” 세우기를 하다니. 인간은 줄을 설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줄을 서는 것은 개인의 판단과 질서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행위’로 자기의 순서를 알고 기다리며 사회 속에 정해진 규칙과 약속을 받아드리고 지킨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거엔 어쩔 수 없이 “줄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귀소성(歸巢性)’ 때문이었다. 인터넷 예매가 보편화 되기 이전, 명절날인 구정과 추석 때가 되면 고향에 가려는 사람들이 기차 역전 매표소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약삭빠른 사람들은 새치기를 하여 다툼이 일기도 했는데, 역전에는 완장을 찬 지도원이 막대를 들고 다니며 “줄들 잘 서”라는 엄포를 놓는 풍경이 TV 뉴스에 뜨기도 했었다. 고향에 내려갈 수 있는 차표가 한정되었기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던 시절의 아린 추억이다.

 

또한, 죽음의 개스실로 향하는 “줄서기”도 있었다. “‘첼란이란 시인 말야, 식판 들고 저렇게 서/있었습니다/그때는 새치기가 중요한 시절이 아니라/줄에서 다른 줄로 슬쩍 새는 게 중요했지요/살려면 줄에서 빠지는 게 중요했습니다’” 시 창작 강의실 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시인은 “눈 속에”서 “벌서듯” 눈을 맞고 있는 “겨울나무”가 마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식판 들고 줄 서”서 “벌서고 있”는 것 같은 “파울 첼란”에게로 연상 작용이 확대된다. 1942년 1월 20일은 유대인 말살 정책이 반제회의(Wannseekonferenz)에서 ‘최종 해결책’으로 결정된 날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회의를 통해 단 한 사람을 죽음의 “줄서기”에서 “빼내기”로 결정했는데, 그 대상이 어린이도 여성도 노인도 랍비도 아닌 바로 시인 “첼란” 이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수용소의 참상을 세상에 알려주길 간절히 바랐던 유대인들은 시인을 선택했던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줄서기”가 ‘축제’일 수도 있다고 한다. ‘신제품 출시를 기다리며 줄은 선 사람들은 줄서기를 마치 파티처럼 즐기는데, 이들은 줄을 서며 만나는 ‘일시적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축제’의 일원이 되어 연대감을 나누는 행위로 ‘줄서기’를 하나의 문화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줄서기를 찍어 SNS에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며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문화 예술 및 스포츠 등 다양한 행사에 축제처럼 줄서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또한, 추워지는 날씨에 더욱 고립될 독거노인들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을 찾아가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앞다투며 줄을 섰으면 좋겠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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