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모래 / 이형기

서대선 | 기사입력 2020/11/09 [09:17]

[이 아침의 시] 모래 / 이형기

서대선 | 입력 : 2020/11/09 [09:17]

모래

 

모래는 모두가

작지만 고집센 한 알이다

그러나 한 알만의 모래는 없다

한알한알이 무수하게 모여서 모래다

오죽이나 외로워 그랬을까 하고 보면

웬걸 모여서는 서로가

모른 체 등을 돌리고 있는 모래

모래를 서로 손잡게 하려고

신이 모래밭에 하루 종일 봄비를 뿌린다

하지만 뿌리면 뿌리는 그대로

모래 밑으로 모조리 새나가 버리는 봄비

자비로운 신은 또 민들레 꽃씨를 

모래밭에 한 옴큼 날려 보낸다

싹트는 법이 없다

더 이상은 손을 쓸 도리가 없군

구제불능이야

신은 드디어 포기를 결정한다

신의 눈 밖에 난 영원한 갈증! 

 

# “작지만 고집센 한 알”의 “모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가까이 모여 있다 하더라도 “모른 체 등을 돌리고” “서로 손잡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에겐 생활공간으로서의 물리적 공간과 내적인 심리적 공간이 존재하며, 우리의 삶은 생활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상호 의존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물리적 공간 속에 있어도 심리적 공간 속에 있는 요소인 흥미나 가치관, 관심사나 신념의 체계가 다르면 “신이” “서로 손잡게 하려고” “하루 종일 봄비를 뿌려”주어도 “뿌리면 뿌리는 그대로/모래 밑으로 모조리 새나가 버리는 봄비”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모른 체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손잡게” 할 수 있을까? 레빈(Kurt Zadek Lewin, 1890-1947)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면, 해빙(Unfreezing), 변화(Changing), 그리고 재결빙(Refreezing)의 과정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변화를 위해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먹이와 같은 보상기제만을 주기 보다는 변화에 대한 걸림돌 제거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세계 제 2차 대전 중,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국가기관인 음식습관연구회(Committee on food Habits)에서 평소엔 먹지 않던 동물의 창자, 꼬리, 뇌와 같은 것을 전 국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하였다. 처음 전략은 동물의 특수부위를 먹는 것이 전시 중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했으나 실패했다. 이때 레빈은 문제가 되는 요소를 찾아내어 그 문제점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3단계로 체계화 했다. 

 

첫 번째는 해빙(Unfreezing) 단계로 지금까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었다. 동물의 특수부위를 먹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애국심에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동물의 특수부위를 먹지 않았던 것이 어떤 착각이었는지를 계속 설명해 주었다. 이때 반대세력을 관찰하고 이들의 무조건적인 저항을 없애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 해빙 단계에서는 저항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었다.

 

두 번째는 변화(Changing)의 단계로 사람들 간의 역학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식탁에서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정부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바로 주부들이다. 주부들 중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지나가듯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주는 것이었다. 주부들 커뮤니티에서 동물의 특수부위를 맛있게 요리해서 먹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따라서 먹어 보도록 유도했다.

 

세 번째는 굳히기 단계로 재결빙(Refreezing)을 시도했다. 과거와 다르게 동물의 특수부위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영양도 풍부하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자연스런 상태로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실행결과 전 국민이 동물의 특수부위를 거부감 없이 먹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변화를 위한 적확한 전략을 세우지는 않고, 막연히 “봄비를 하루 종일 뿌려준다”거나 “민들레 꽃씨”를 “한 옴큼” 날려준다고” “고집센 한 알”의 “모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변해서 서로 손을 잡지는 않는다. 권력에 기댄 선전이나 파블로프의 개처럼 먹을 것만 퍼준다고 고마워하거나 마음이 돌아서지도 않는다. “구제불능이야”, “더 이상은 손을 쓸 도리가 없”다며 포기하기보다는 변화에 걸림돌이 되는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MJ포토] 임시연, '화려함 뽐내는 뷰티 디렉터'(맨오브더어쓰 202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