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화백의 작품세계_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의 산물

신항섭 | 기사입력 2020/10/13 [10:45]

박진우 화백의 작품세계_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의 산물

신항섭 | 입력 : 2020/10/13 [10:45]

사실적인 묘사력은 화가로서의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창작을 전제로 하는 화가의 자유로운 조형적인 사고는 견고한 사실적인 묘사력으로부터 발단한다. 기발한 창의적인 사고, 즉 탁월한 조형적인 상상일지라도 그것이 사실묘사로만 가능할 경우 사실적인 묘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실적인 묘사력을 갖추지 않으면 조형적인 상상력은 어느 순간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조형적인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기 위해서는 사실적인 묘사력은 필수적이다.

 

박진우는 어떠한 조형적인 상상일지라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역량과 자질을 갖추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조형적인 상상력은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가적인 시야를 거침없이 넓혀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상상 그리고 우연적인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면서 특유의 미적 감수성이 자유롭게 분출한다. 그 어떤 형식논리도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이야말로 무한한 창의력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 Think. 145.5×112.0cm. Mixed media. 2017  © 문화저널21 DB


자유로운 조형적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그의 사실적인 묘사력은 질그릇 항아리를 비롯한 사실묘사에 중점을 둔 일련의 작품을 통해 확실히 검증받았다. 실체를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질그릇 항아리에 대한 극렬한 사실묘사는 기술적인 한계치까지 이르렀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질그릇 항아리와 선염기법의 추상적이고 우연적인 이미지가 공존하는 화면 구성은 초월적인 시공간을 연출한다. 

 

그는 여기에서 단순히 재질로서의 질그릇 항아리에 대한 사실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 항아리에 얽힌 전통적인 삶의 애환과 역사성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실재하는 소재를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항아리가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을 반추하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항아리는 실재하는 사실이고, 선염기법으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 및 연속성을 시사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두 가지 이미지를 하나의 통합된 화면공간에 놓음으로써 시각적인 긴장감이 생긴다. 더불어 잊고 있던 과거의 시간은 물론이려니와 전통적인 삶의 연속성 및 문화적인 가치를 재음미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형식은 우물물을 뿜어 올리는 펌프나 편지통과 같은 과거의 삶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통해 반복된다. 여기에서 그는 일차적으로 화가로서의 윤리성, 즉 사실적인 묘사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이후 작업에서 전개되는 비구상 또는 비정형의 미를 중심으로 하는, 다채로운 조형적인 모색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셈이다. 

 

다른 시각에서 볼 때 완성도 높은 사실묘사력은 일단 비례감각과 관련이 있다. 비례감각은 다름 아닌 데생, 즉 사실적인 묘사력을 숙달하는 과정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형태의 변형이나 왜곡 등의 조형어법을 구사하는 작업에서 비례감각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화면에 놓이는 소재의 크기나 위치, 방향 등은 모두 비례를 통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점과 선, 면과 같은 조형적인 요소는 실제의 작업, 즉 화면 구성에서 비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형적인 개별성, 즉 독자적인 형식미의 결정과 관련해 반드시 자신만의 비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의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형태를 변형하고 왜곡시키는 비례감각이야말로 형식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듯이 개별적인 비례를 산출해가는 최근 작업은 향후 독자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확립하는데 따른 하나의 절차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자유로운 형태해석 및 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형식의 작업에서는 비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모딜리아니의 경우처럼 자기만의 독자적인 비례를 찾아냄으로써 개별적인 형식미를 완결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인물 및 정물을 중심으로 하는 최근 작업은 비정형의 미를 추구한다. 형태가 비사실적으로 왜곡되고 변형되는데도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색채만으로도 미적 감흥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 원색적인 색채이미지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무엇보다도 평면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보색대비와 같은 극렬한 색채이미지에 능숙하다. 구체적인 형태묘사를 지양하여 형태를 단순화하고 변형하거나 왜곡하여 간결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비정형의 미에서 비롯되는 미적 쾌감이 자리한다. 

 

▲ Think. 162.2×112.0cm. Mixed media. 2017  © 문화저널21 DB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최근 작업은 화려한 색채 및 자유로운 형태해석 그리고 구성적인 아름다움을 하나의 형식적인 질서로 융합한다. 어느 면에서 형태미보다는 색채대비 및 조화를 강조하는 경향이다. 비정형의 미와 감각적인 색채 및 구성이 지어내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정형화된 형식을 벗어났을 때의 자유로움 및 해방감을 부추긴다. 특히 원색적인 색채이미지가 주도하는 구성적인 화면은 색채포름의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원색적인 색채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으로써 색채포름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주도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형태를 결정짓는 윤곽선의 사용을 억제하는 것도 색채포름이 지어내는 색채대비 및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령 꽃병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색면과 색면이 만나 형태가 결정되는 식이다. 다시 말해 꽃병과 그 꽃병을 에워싸는 배경을 서로 다른 색채로 표현함으로써 윤곽선으로 형태를 규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꽃병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의도적으로 선을 사용하여 꽃병의 형태를 만드는 것과 서로 다른 색채가 만나는 경계로 인해 형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색채포름의 순수성을 돋보이게 한다. 선으로 형태를 결정짓는 방식, 즉 명료한 윤곽선으로 형태를 만드는 묘사적인 표현방식은 어딘가 의도적으로 보인다. 반면에 명확한 윤곽선은 이미지의 견고성과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장한다. 최근 작업 가운데 중국에 있는 독일마을 풍경은 명확한 윤곽선을 구사함으로써 조형적으로 견고하다는 느낌이다. 뚜렷한 윤곽선으로 인해 전체적인 인상은 경직돼 있으나 상대적으로 조형적인 짜임새가 돋보인다. 자유로운 표현 대신에 조형적인 견고함 및 안정감을 중시한 결과이다. 

 

독일마을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형태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색면의 집합처럼 보일 정도이다. 다소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특정한 건물의 형태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다만 지붕이나 창 또는 벽면으로 유추되는 단편적인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생략하는 가운데 면을 분할하고, 또 그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화면구성은 견고한 조형감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여기에서도 색채포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색채포름과 관련해 원색적인 이미지로 인한 발색의 아름다움은 간과할 수 없다. 시각적인 흡인력이 강한 원색은 그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조형적인 무기일 수 있다. 하지만 원색과 더불어 어느 특정의 물감에만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물감 및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조형적인 스펙트럼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의 작품에서 수채와 먹, 아크릴 그리고 때로는 유채를 혼용함으로써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아크릴과 유채는 질감표현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이는 평면작업의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표현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맑고 순수하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듯싶으면서도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정당화시키는데 집중할 따름이다. 이는 창의적인 사고 및 열린 미적 감수성 그리고 완성도 높은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화가의 시선은 멀리 두어야 하고 화가로서의 길은 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양식 및 형식에 안주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 전시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조형적인 제안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창의적인 태도 및 노력이 돋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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