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그림자 남자 / 서영택

서대선 | 기사입력 2020/10/05 [09:01]

[이 아침의 시] 그림자 남자 / 서영택

서대선 | 입력 : 2020/10/05 [09:01]

그림자 남자

 

한 번도 불 켜진 적 없는 그 남자

그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모두 여기 있다

어둠으로 된 가면을 쓰고

지하로만 다니는 사람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은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요즈음 어떠냐고 물어오면

잘된다고 말하며 이마의 주름을 만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때론 벽에 붙어 옆 건물로 건너가거나

계절이 바뀌어도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지는 해에 앉는 새들을 보며

발끝에 묻은 쓸쓸함을 떼어내느라 잠들지도 못하고

만지는 꿈마다 흑백이 되어버리는

 

누군가 밟고 지나가도 일어서지 않는

납작 엎드린 그 남자

 

다시 어둠이 움트는 밤이 오면

알 수 없는 방향이 등 뒤로 쏟아진다

 

그림자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바닥이 몸을 구부리기 시작한다

접혀진 계단이 펴지고 있었다

 

저기. 그림자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뛰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 ‘총알 배송’으로 택배 물건이 도착했다. 전날 오후에 주문한 상품이 그 다음 날 오전에 바로 배달된 것이다. 비대면 시기를 건너면서, 택배 주문이 늘었다. 주문한 물건을 빠르게 받을 수 있으니 좋으면서도, 한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 사람”이 되어 주문된 물건을 ‘총알’처럼 배송하기 위해 고되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당신은 직장에서 ‘내부자’인가, ‘외부자’인가. 아마도 ‘내부자’라면 정규직원으로 안정된 월급과 지위와 규칙적인 시간 노동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으리라. 그러나 ‘총알 배송’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외부자’일 확률이 높다. 주문된 물건을 포장하는 일, 주문된 주소로 물건을 분류하는 일, 포장된 물건을 배달 차에 싣는 일, 그리고 주문된 장소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달하는 일 등은 아마도 내부자들이 가족들과 쉬고 있을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이런 야간 노동의 현장에는 ‘외부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에 하청을 받은 노동자들이 더 많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며, 이분들이 일하는 시간은 불규칙하거나 보수에는 계산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2018년 12월 화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 네 살의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가 밤샘 근무 도중 기계에 끼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가 나던 그날 그 청년은 밤새 일했다. 화력 발전소는 24시간 돌아가야 했고, 위험한 야간 노동은 비정규직에게 떠넘길 수 있으며 비용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달빛 노동 찾기’ 보고에 의하면 대공장 구내식당 조리원, 대학 시설 관리직, 병원 지원직, 교도관, 우체국 우정 실무원, 지하철 역무원과 신호직, 방송작가, 공항시설 관리직, 고속도로 순찰원 등은 편리나 안전 등의 이유로 ‘24시간 풀가동’ 상태가 당연시되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누리는 그 수많은 편의가 중단 없이 24시간 내내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휴식시간과 제 때에 밥 먹는 시간까지도 포기하며 노동하는 분들이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은 모든 ‘공간적 경계’를 넘어 달려 나아가려 한다. 지리적 제약을 넘어서고 신체적 한계마저 뛰어넘으려는 욕망으로 인간이 쉬어야 하는 밤이라는 자연적 시간의 리듬마저 허물고 있다. ‘365일 24시간’ 풀가동의 사회에서 모든 시간은 ‘생산 가능한 시간’이 되어 버려, 인간 삶의 ‘실제적인 휴식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365일 24시간’의 삶을 채워주기 위해 ‘달빛 노동자’들은 “그림자 사람”이 되어 “다시 어둠이 움트는 밤이 오면“, “천천히 주먹을 쥐고” “그림자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달려간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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