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용 화백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단상(斷想)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0/09/18 [16:55]

박종용 화백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단상(斷想)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0/09/18 [16:55]

신화의 속살은 땀과 눈물_ 신의 창조품을 향한 구도의 길을 모색하다  


 

화업 60년에 이르는 화운당(花雲堂) 박종용 화백은 특이한 경력의 천성(天成)의 작가다. 우선 그는 풍부한 영감(독창성)과 뛰어난 필력에 더하여 굳은 예술의지까지 골고루 갖춘 영락없는 예술인으로서, 60수년 풍상 속에서도 미의 진실을 향해 (자기)정진하면서 풍모자체를 예술의 원형으로 주조시킨 희귀한 작가다.

 

그의 예술인생은 60년 전 인 8살 때 시작되어 12살 때 화투그림으로 ‘그림신동’이란 칭찬을 받는 바람에 화가를 결심한다. 이후 그의 예술인생은 인사동 시절(1969〜1979)과 용인시절(1979〜1990) 및 천안시절((1979〜1990)을 거치면서 각종 평면(회화)작업을 넘어 각종 조각, 도자 등 전 장르의 작품들을 다재다능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연금술사’, ‘전천후 예술가’로 별칭 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시절은 가족들의 생계유지 등을 위한 눈물의 세월이었다.

 

▲ 결. 마대·흙·아교. 162×130. 2019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그러나 운명의 필연적 흐름에 따라 2004년부터 자신의 예술들이 유목(流木)처럼 사라져버리는 상황에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면서 영원을 갈구하는 생명예술을 향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발원된 그의 새로운 추상예술은 초기 실패를 거쳐 2006년부터 시작된 설악산 아틀리에에서 10여년의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2015년 겨울경부터 비로소 심도 깊은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시 3년여 세월을 거치면서 명상과 신비의 선율이 울려지는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되어 2019년 예술의 전당, 춘천 KBS전시장에서 전시되어 열풍을 불러일으킴으로서 박종용의 예술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전시열풍은 해외까지 알려져 미국 및 프랑스의 유수화랑들로부터 전시요청을 받아 금년 봄 미국을 방문하여 협의했으며,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으로 보여 지는 내년 하반기부터 성사될 것으로 보여 진다. 어쨌든 세계예술의 중심지에서 박종용 작품의 예술성을 먼저 알아채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역정과 예술여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새삼스런 뉴스는 아니나, 신화로까지 평가되어지는 삶과 예술의 속살은 땀과 눈물이다. 그는 신의 창조품을 갈구하면서 각양각색의 ‘결’을 창작하기 위해 구도의 길을 모색하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인생과 예술의 단상을 살펴본다.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란 절박감으로 감성의 붓질 멈추지 않을 것(작가노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며, 신화적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는 그의 인생전기는 땀과 눈물의 결정체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나온 과정이었고, 또한 앞날의 평가기준도 아니다. 예술의 평가는 위대한 영감(독창성)과 뛰어난 필력 등이 절대적 평가기준이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냉엄하게 평가되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박종용 화백은 향후의 (세계적)평가들을 우려, 마치 신의 창조품과 같은 세계예술사에 유례없는 각양각색의 ‘결’을 창작할 것이며, 동시에 ‘결’의 조각품들도 창작할 것임을 작가노트를 통해 밝히고 있다. 박종용 예술의 새로운 전변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우선 그의 작가노트를 살펴본다.

 

“...(중략)... 오늘도 화운당 아틀리에의 커다란 화폭 앞에 앉아 명상에 잠겨있다. 10여년 만에 어렵게 탄생되어진 나의 추상표현주의 예술이 향후 세계예술계 등지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긴장되어 식은땀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되는 예술계의 생리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예술은 시작되었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은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때론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중략)... 작품은 인생과 예술철학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작품)메시지를 간결하면도 명징하게 전달해야한다. 몰론 작품의 생명선은 위대한 독창성이다.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적 고민이지만 풍부한 영감이 흘러나오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기 위해 오늘도 작업실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 결(과녁). 마대·흙·석채·아교. 130×97. 2020.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나의 예술관은 지극히 평범하다. ‘무릇 그림은 철학적 사유의 산물로서 인격의 또 다른 표상이기 때문에, 맑은 (정신)상태에서 모자람과 넘침이 없이 자신이 사유하는 모든 것을 간결하게 담아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핵심은 창조를 향한 독창성이다.

 

그러므로 작품들은 ‘생명의 떡잎처럼 불완전한 듯하면서도 생동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은은함이 비쳐 나와 마치 잔잔한 호수를 보는 것 같아야 하고, 또한 느낌으로 전달되면서 명상과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색의 공간 등을 제공하여 영감의 갈증을 해소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 ‘성찰과 겸손의 미학 속에서 드러냄이 없는 가운데서도 군더더기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고독과 명상의 선율과 시향이 울려 퍼짐으로서 작가의 진정성과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의 본질적 기능이기도 하다.

 

이런 예술관에 따라, ‘창조적 예술품은 무엇이고, 운명과 사명은 무엇인가?    유례없는 독창적 작품들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에 대해 늘 쌍 고민하면서 밤을 밝혀가며 생의 종점까지 돌이 닳아 가루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안고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을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고 사명인 것이다.

 

...(중략)... 오랜 세월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어렵게 먼 길을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달려왔으나 마음 한 구석은 언제나 공허했다. 채워지지 않는 영감의 갈증이 육신을 짓누르는 가운데, 수많은 세월동안 이를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이제야 ‘결’의 향연을 통해 어렴풋이 길을 찾은 것 같다. ‘결’은 살점을 태워가며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로서 (나의)숨결이자 생명체인 것이다. 

 

모든 분야 나름대로 치열하기는 이를 데 없지만, 특히 예술분야는 더더욱 치열하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되며, 예술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는 절대적 진리다. 이러한 치열함 속에 독보적인 예술작품들을 창작하여 예술사에 기록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지난한 것이다. 신의 창조품과 같은 (창조)작품 출현을 위해서는.

 

...(중략)... 나는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결’의 조형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중략)... 하늘의 무수한 별들의 향연과 같은 ‘결’의 향연을 통해 나의 예술세계를 알리면서 평가받고 싶다. 이를 위해선 세계 예술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각양각색의 수많은 ‘결’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되어져야함은 물론이다. 어찌 보면 남은 인생은 이를 위한 노예 같은 삶에 비유 되어질 수 있다. 

 

▲ 결. 마대·흙·석채·단청·아교. 194×258. 2020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충격적 감동을 안겨주는 세계 예술사에 유례없는 독보적 작품 창작이란 말처럼 그렇게 쉬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작품으로 증명해야하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중략)...이런 갇혀 있는 상황과 예술에의 신념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중략)... 형형색색의 온갖 ‘결’들을 통해 萬有의 세상을 드러내면서, ‘결’의 비행선에 모두를 태워 우주를 비행하고 싶다. 더하여 또 다른 ‘결’들의 향연인 ‘결’ 조각예술도 마음껏 펼치면서 말이다. 인간사의 상흔들을 예술의 용광로에 녹여가며 신화창조의 꿈을 안고 생을 치열하게 불태울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란 절박감으로 감성의 붓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9월의 작가노트).”

 


그의 예술이 세계사에 기록되면서 문화전령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길 기대


 

3Page에 이르는 9월의 작가노트는 지난 3월의 작가노트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신의 창조품을 향한 세계예술사에 유례없는 각양각색의 독보적인 ‘결(회화 및 조각)’들을 창작하겠다는 자기다짐이다. 이를 위해 예술의 노예를 자임하면서 구도의 구슬땀을 흘릴 것이다.... 영겁의 시간들 속에 찰 라의 순간을 살아가는 현세에서 작은 예술의 발자취라도 남겨야 한다는 절박감으로서 말이다.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하면서, 예술의 본질적 기능인 ‘창조’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가면서 자신의 예술철학과 앞날의 계획(다짐)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는 (박종용)예술의 나침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창조의 열정으로 세계예술사에 유례없는 새로운 착상을 드러낸다는 의미로서,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다.

 

9월의 작가노트를 통해 그가 펼칠 앞날의 그림들과 활동들이 선명하게 클로즈업되어 지기도 한다. 세계예술사에 유례없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결(회화 및 조각)’들의 향연을 펼쳐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다함으로서 역사의 언덕 위에 살아간 흔적이라도 남기겠다는 것이다. <誰人甘死片時夢, 超然獨步萬古眞.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란 성현(성철스님)의 출가송이 되새겨지는 상황이다.

 

지난 60년의 화업을 통해 박종용은 지칠 줄 모르는 예술의 투혼을 발취함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진면목을 나름대로 보여 왔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 창작했던 작품들이 역사의 언덕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껴,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추상예술을 시작하여 10여년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생명의 율동이 울려 퍼지는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여 국내의 열풍을 넘어 세계가 손짓하게 만든 일 등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투혼을 넉넉히 짐작하게 한다.

 

그는 이제 다시 세계의 하늘길을 개척하면서 작가노트를 통해 출가의 변(辯) 등을 알리고 있다. “(세계의) 하늘길은 쉽사리 보이지 않고 첩첩산중 태산의 산맥들을 넘어야 하지만 살점을 태워 노력하면 하늘도 도와 줄 것으로 생각한다(작가노트).”면서, 세계예술사에 기록될 수 있는 유례없는 ‘결(회화 및 조각)’들의 창작에 생을 불태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는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롭게)탄생시킨다는 의미로서 향후의 위업이 기대되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작가노트 및 인터뷰 등을 통해 살펴본 그의 (향후)예술세계는 참으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화엄의 예술세계일 것이란 점은 능히 짐작된다. 그는 우선 현재의 백색 ‘결’로부터 오방색의 ‘결’들까지 형형색색의 독보적인 ‘결’들을 창작함은 물론, 더하여 수많은 결들을 입체화한 ‘결’의 조각들을 창작하여 세계 속에서 냉엄하게 평가받을 것을 결심하고, 이를 위해 아틀리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결’의 입체화는 충격적 발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올 것으로 보여 진다.

 

▲ 결. 마대·흙·석채·단청·아교. 194×258. 2020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우주를 향하여 핵분열을 일으키는 듯한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수많은 ‘결’들의  향연은 지금까지 세계예술사에서 보지 못한 영감의 분출임은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작품을 통해 자연과 만물의 원리를 느끼게 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생명이 꿈틀거리는 듯한 각종 ‘결’의 창작을 고안했다. 나의 예술은 동양적 전통주의 사상 및 철학에서 근원되었지만, ‘예술을 통한 세계인은 모두 친구’란 예술이념에 비춰 볼 때 세계를 향한 예술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명제에 부합되는 것이다.”란 그의 주장은 示唆하는 것이 심중하다.

 

그는 앞으로 원초의 의미를 내포하는 순백의 ‘결’로부터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오방색의 각종 심오한 ‘결’들에 더하여 입체(조각) ‘결’의 합창으로 세계 속에 웅장한 (‘결’의)교향곡을 울릴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우주의 (과학적)공상을 시각화 시켜 놓은 듯 기묘(신비)면서도 심오하다. 이런 측면에서 ‘영감의 자유(독창성)’에 관한한 그는 무한의 광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더하여 박종용 화백은 흙과 각종 혼합재료 등을 사용하여 미와 우주의 원리를 자신의 물성언어로 조형하고 있다. 특히, 체력과 예술에의 비상한 의지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그러한 재료를 사용하여 심도 깊은 예술로 승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마치 생성하는 떡잎처럼 생명의 율동을 느끼게 하면서 우주로의 비행을 하는 것이다.

 

특히, 화면과의 피나는 싸움 끝에 탄생되어진 작품들은 구슬땀으로 얼룩진 노동의 미학으로서 영혼의 결정체다. 우주로 비행하는 결들은 명상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숨소리마저 멈추게 하고 있다. 순간과 영원을 함께 호흡하면서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살며시 귀를 기울이면 창공의 바람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우주 만물의 여러 가지 존재가 서로 의지하여 同一體를 이루는 성상(成相)의 예술로 그의 예술이 세계사에 기록되면서 문화전령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길 기대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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