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용 화업의 미래를 그리다

최효준 | 기사입력 2020/07/27 [10:47]

박종용 화업의 미래를 그리다

최효준 | 입력 : 2020/07/27 [10:47]

2019년 초, 박종용 화백은 예술의 전당과 춘천 KBS에서 최근 15년 간에 걸친 지난(至難)한 화업(畫業)의 결실을 보여 주었다. 그간 미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이룩한 성취를 성큼 넘어서, 순수 추상미술(抽象美術)의 높은 경지를 놀라운 규모로 펼쳐 보여 준 것이다. 특이한 것은 두 전시 모두에서 사실적인 회화(각각 인물 초상과 호랑이 그림)가 함께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런데 이는 그에게 있어 사실적 작업 즉 구상(具象) 작업은, 중국의 고개지가 말한 이형사신(以形寫神)의 경지에서 형상으로 정신(情神)을 그리는 한 형식으로, 그가 근간 추구하는 완전 추상(抽象)의 작업과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 (왼쪽부터) ◆무제 Untitle, 139.9.×259.1cm, Mi×ed media on Canvas, 2018 ◆무제 Untitle, 72.7×90.9cm, Mi×ed media on Canvas, 2018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당시 그의 전시 주제는 ‘결’이었다. 결이란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의 근본 바탕이 되는 보이지 않는 질서이다. 나무나 돌을 쪼개고 다듬는 이에게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지만 그 사물의 결을 안다는 것은 필수적이다. 『장자』의 <문혜왕과 백정 이야기>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백정이 왕에게 이르기를, “....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적에는 보이는 것 모두가 소였습니다. 그러나 3년 뒤에는 완전한 소가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춰버리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 소의 본래 구조에 따라 칼을 쓰므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부닥뜨릴 일이 없습니다.” 왕이 이르기를, “훌륭한 지고, 나는 너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당시 전시되었던 박종용의 추상 회화는 멀리서 보면 백색 단색의 화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동심원(同心圓) 구조이거나 직교(直交)하는 그 ‘결’이 드러난다. 현실에서는 범인(凡人)들이 식별하기 어려운 사물의 결을, 멀리서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마침내 뚜렷이 알아보게 되는 체험을 범인들로 하여금 하게 해준다. 당시 전시물이 거의 완전추상 회화였음에도 이 전시가 이례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비결이 거기에 있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평생에 걸쳐 관심을 두고 수집하였던 국내 대가들의 ‘단색화’ 걸작들과, 세계 미술계의 추상표현주의 일품(逸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단연코 그 반열에 들어갈 박종용의 다음 국면의 작업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여기서 잠시 지평을 넓혀 1950-1970년대 미국으로 가 보자. 자신들의 문화문명이 노정한 파국적 양태에 절망한 의식 있는 서구 지식인과 예술인들은 동양의 사상, 동양의 정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이때 등장한 화가 중 두 사람은 동양적 정신성(情神性)을 남다른 방식으로 회화로 구현하였다.(1) 당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가 제작한 검은색 단색 회화에서는, 몇 분(分)을 차분히 응시해야만 십자 형태의 선(線)이 미세하게 드러난다.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동년배였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작품에서는 특유의 떨리는 듯한 평행의 수평선들이 뚜렷이 식별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뭉뚱그려져서 어떤 흐름과 정조(情調)를 형성한다.

 

서양 작가이지만 그들은 이렇게 동양적이고 선(禪)적인 적멸(寂滅)의 경지를 시각적(視覺的)으로 효과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미세한 ‘결’을,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게, 표현 아닌 둣이 표현하여, 그 각별한 본질을 각별하게 드러내었다. 한편 박종용은 반세기 동안의 치열한 화업의 도정에서 우리 미술, 동양 미술의 전통을 철저히 체화시켰음을 증명하였다. 서양인도 해 낸, 만물의 본질을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드러내는 그 일을, 기량이 출중한 생래적 동양정신의 화신이 못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라인하르트와 마틴의 미술세계를 보면서, 박종용이 이루게 될 화업의 다음 국면, 그 경지를 유추하게 된다.

 

▲ (왼쪽부터) ◆무제 Untitle, 72.7×90.9cm, Mi×ed media on Canvas, 2018 ◆무제 Untitle, 91.0×116.8cm, Mi×ed media on Canvas, 2018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박종용은 앞으로도 미술 행정가이자 수집가로서 영일이 없는 삶을 살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는 백담사 기슭 울창한 삼림 속 작업실에서 화업 50년의 결실을 맺기 위한 고독한 작업에 몰두할 것이다. 그것은 박우찬의 말대로 묵언(默言)의 수행이며 구도자의 고행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박준아가 언급한,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절대주의의 현대적 구현 시도가 될 것이다. 유난히 맑은 설악의 밤하늘을 가득히 수놓은 별빛들이 수만수억년 장구한 세월 만에 도달하는 그곳에서 그는 자기와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웅혼한 자연 속에서 만물의 ‘결’과 맞닥뜨리고 그것을 누구도 이루지 못한 방식으로 화폭 속에 담아 낼 것이다. 필생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배전의 열정과 몰입을 통해 예술혼을 불태울 것이다.

 

루이제 린저의 소설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에서 주인공 소녀는 맹목적인 절망감에 휩싸여 아저씨가 계시는 수도원 마당을 정처 없이 달리다가, 정원 한 구석 오래된 수반(水盤) 앞에 서서 전율하며 그 고인 물에 작은 돌을 던진다. 완벽하게 규칙적인 유리알 같은 파문이 소리 없이 일다가 수반가에 부딪혀 되돌아오면서 교차했고 이상스러우나 어떤 법칙(2) 에 따른 무늬를 이룬다. 그 순간 소녀는 그 엄정하고 규칙적인 물결, 물의 ‘결’을 보며 문득 든  깨달음을 이렇게 토로하고, 소설은 끝난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앞으로 나의 생애를 이끌어 갈 것은 뒤엉키고 어두컴컴하며 괴로움에 찬 인간적인 격정이 아니라, 맑고도 냉엄한 정신의 법칙이 바로 나의 생애를 이끌고 가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던 것이다.” (3)

 

▲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 관장이 2019년 3월 23일, 박종용 화백 초대전 “‘결’의 교향곡”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박종용은 엄정하고 규칙적인 만물의 결, 그 공간적 광대무변함과 시간적 영원성에 매료되었고, 2019년 세간에 공개한 작품들을 통해 그 본질을 형상화하여 그것을 보여주었다. 수반(水盤) 위 파문의 엄정성과 규칙성과 영원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수반(水盤) 위의 파문은 가라앉고 더는 아무 결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엄정성(嚴正性)과 규칙성(規則性)과 영원성(永遠性)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바로 거기 내재(內在)되어 있음을 우리는 확연히 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내재하는 결의 존재, 그 비가시적인 질서를 이제 어떻게 ‘보이지 않게’ ‘드러내어’ 표현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그것은 “주둥이 좁은 병 속의 새를 어찌 밖으로 꺼낼 것인가?”처럼 논리적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 즉 화두(話頭)가 될 것이다.

 

이 화두를 풀어 이루어 낼 창작 작업. 그것은 면벽(面壁)을 하듯 화면을 마주한 이가 선정(禪定)에 들어 감각과 이성의 작용을 자연스럽게 끊어버리고 참구(參究)할 대상, 바로 그 시각적 화두(話頭)를 만방의 만인에게 제시하는 작업이리라. 그것이 앞서 간 대가들의 족적을 따라 박종용이 이룰 앞으로의 도전적인 과업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세간의 성가(聲價)나 명성(名聲)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정진과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1)졸고, 『1960년대 라인하르트의 흑색회화와 마틴의 단색조 회화에 구현된 정신성』, 서울대학교 대학원석사논문, 1999 참조   (2) 바로 호이겐스의 법칙일 것이다. (3)루이제 린저 저, 홍경호 역,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범우사, 1971

                           

2020. 07. 26.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 

 

[편집자 주] 최효준 박사(조형미술학)는 서울대학교 경제학(학사),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 서울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석사),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조형미술학 (박사)을 전공했다. 삼성문화재단 국제부 부장, 대구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전라북도 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환기미술관 이사, 경기도미술관 관장,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공립 미술관의 미술정책 자문 등을 하면서 (미술)문화발전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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