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기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SM프로모션 홍성민 대표와 함께 모처럼 성내동에 위치한 SM 체육관 6관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홍성민 관장은 SM체육관과 SM프로모션 상표 등록을 각각 마친 직후인지 한결 상기된 표정이었다 SM 프로모션은 서울·경기에 모두 11개의 체육관이 포진되어 있는데 엘리트 체육을 지향하는 선수육성반에 소속된 30명 복서들이 각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이면 SM프로모션 본관이 있는 목동에서 합동훈련을 한다. 용광로 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선수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SM 체육관의 관장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기자는 그날 홍성민 대표 일행과 남양주 불암산 기슭에 있는 박종팔 부부가 운영하는 건강 힐링센터로 오찬을 함께 하기 위해 떠났다. 불암산 기슭아래 병풍처럼 펼쳐진 수려한 자연경관에서 유유자적 인생 3막을 시작하는 농군(農軍) 박종팔과 아내 이정희 여사, 그리고 때마침 방문한 중랑구에서 골프숍을 운영하는 30년지기 주정규 대표와 철원에서 건설업을 하는 후배 김종우 대표 등 박종팔의 지인들이 합류,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동갑내기 주정규는 박종팔이 속세(?)를 떠나 지내는 가운데도 유일무이 하게 간담상조(肝膽相照)하며 지내는 의협심 강한 절친이다.
46승 39KO 5패1무를 기록한 박종팔은 동양타이틀과 세계타이틀 매치 방어전만 토탈 26차례 성공했고 39KO승 중 27차례는 5회 이전에 KO로 승부를 결판낸 전형적인 슬러거 였다. 동양 타이틀전에서 기록적인 15연속 KO승으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는 등 화려한 금자탑을 쌓은 중량급의 상징이자 미국 원정 24연패에 종지부를 찍은 히어로 이기도 한 그는 1980년 한해에만 무려 7차례의 동양 타이틀전을 치러 모두 KO로 장식하는 진기록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실 패한 경기에서 얻는 것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생에서도 고난과 좌절은 우리를 쓰러지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딛고 더욱 발전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야 하듯이 박종팔은 패배 후 이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고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의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도 지능지수 못지않게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경기는 84년 7월22일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인 스코틀랜드의 머레이 서덜랜드의 경기다. 서덜랜드는 토마스 헌즈와 마이클 스핑크스와 맞대결에서도 판정으로 버틴 내구력이 강한 복서였지만 박종팔의 필살기인 보디샷에 11회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강남에서 열었던 술집도 폭삭 망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하는 일마다 잇단 카운터 펀치에 비틀거리면서 공들여 쌓은 27개의 부동산이 삽시간에 담배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유행가 제목처럼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로 그 자체였다. 이후 설상가상 아내마저 폐암으로 타계하자 박종팔은 극단적인 생각에 저승문을 두드릴 즈음인 2008년 어느 날 만난 인연이 두 살 연상의 사업가 이정희 여사다. 이 여사를 만나면서 수렁에 깊이 빠진 박종팔은 그녀가 내려준 구원의 동아줄을 잡고 올라와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고 자연스럽게 인생3막이 펼쳐졌다.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드는 것도 아니요, 단하루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듯이 두 사람은 살아온 세월동안 시련을 극복하고 엇갈린 퍼즐을 재대로 맞추면서 비로소 맞춤형 부부로 거듭 태어났다.
기자는 박종팔이 이정희 여사를 처음 만나 수락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할 때 복싱 모임인 대권회(大卷會)를 만들어 박종팔을 회장으로 추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이후 체육관 운영을 거쳐 불암산에 정착 할 때까지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복싱인중 한명이다. 이 여사는 부군 박종팔이 영혼이 유치원생처럼 해맑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곳으로 이전하고부터는 심신이 안정되고 무척 평온한 상태라며 이곳에서 부부가 여생을 함께 보낼 예정이라 한다.
이정희 여사는 지난날 장한평에 남편을 위해 복싱체육관을 차려줬지만 철없는 박종팔은 아내의 깊은 뜻도 모르고 바깥바람을 쐬러 자주 출장(?)을 나가는 바람에 경고누적으로 결국 이정희 여사의 어명(?)에 체육관 사업을 정리하면서 두사람 관계가 순탄치 않은 과정도 있었다.
그런 험난한 냉각기를 거치면서도 신뢰를 잃지 않고 작은 벽돌 하나하나가 쌓여 견고한 성을 구축하듯 한결같은 믿음이 집대성 되어 남은 여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보기 좋은 해피엔딩이다. 박종팔은 말한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만여평의 힐링센터 주변을 걸으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벌레도 잡고 풀을 뽑으면서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박종팔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박종팔은 잠시 후 SM체육관 관장들을 상대로 원포인트 레슨을 했는데, 통상적으로 중량급은 기술이 단조롭다는 편견을 깬 그는 복싱박사 였다. 특히 머리로 사유하지 않고 몸으로 터득한 실전기술에 기자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한국복싱의 테크닉 계보에 서강일, 홍수환, 박종팔, 이승훈, 허영모 등으로 새로운 판을 짜야 할듯하다.
또한 잽을 던질 때 얼굴보다는 가슴부분 으로 (페인팅 모션으로) 던진 후 상대가 오른손으로 브로킹 할 때 노출된 턱을 향해 래프트훅을 강타하는 타법, 그리고 라이트를 때릴 때는 들어오는 상대의 가슴 부분을 정조준하여 탸격하면 자연스럽게 몸을 숙이면서 들어오는 상대의 안면에 주먹의 적중률이 높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침대만 과학이 아니고 복싱야말로 반복적인 훈련 속에 이뤄지는 과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유명한 무사인 미야모도 무사시는 ‘승리에 우연은 없다. 천 번의 연습이 단(鍛), 만번의 연습이 련(鍊)이니 단련(鍛鍊)이 있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하며 단과 련을 구분했다. 단련이란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고 갈고 닦아서 빛이나게 만든다는 뜻이다.
박종팔도 이처럼 ‘천단만련’이라는 무도계의 심오한 격언을 실행하면서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에 홈을 만들듯이 어떤 연습을 몸에 완전히 베어들 때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 했기에 한국복싱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세계정상에 두차례나 올랐던 것이다. 한마디로 복서들의 승리는 정직함 그 자체의 요약이다. 이제 인생 3막에 접어든 박종팔 챔프, 하시는 모든 일에 운수대통, 불로장생, 만사형통하시길 바란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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