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22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혼란기 체신학교 신설과 전문인력 양성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6/02 [09:21]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22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혼란기 체신학교 신설과 전문인력 양성

이세훈 | 입력 : 2020/06/02 [09:21]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혼란기 체신학교 신설과 전문인력 양성

 

일제시대(1910-1945)에 정부의 정책·기획·관리 등 주요보직은 일본인이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위직 또는 집행적 관리직에만 있었다. 광복을 맞이하자 일본인이 차지했던 각 부서 보직을 한국인이 접수운영을 추진 한다. 더욱이 군부의 지휘를 직접 받고 있던 외지와의 유선·무선통신 분야는 기술적 정책업무가 어려웠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하고 전기통신시설을 무사히 인수·관리·운영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종사했던 모든 종업원이 뜻을 모아 헌신해야했다. 

 

1945년 8월 24일 당시 총독부 체신국의 한국인끼리 재경체신종업원대회를 열고 위원장에는 길원봉(체신이원양성소 소장)과 위원 31명을 선임한다. 이들은 회의를 열고 혼란기의 체신업무를 한국인이 맡아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뒤이어 전기통신분야 한국인 기술자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구실로 일본인 기술자 본국송환을 일시 연기한다. 그들을 전기통신분야의 일부 기술직부문에 잔류하도록 한다. 한국인 기술요원으로 충당할 수 있었음에도 6개월여 일본인 기술자들이 잔류하여 업무를 맡아왔다.

 

군정이후로 일부 기구의 폐지, 가입전화의 해제, 체신사업동조위원회의 설치 등 전후조치가 있었다. 전시특례규정이 그대로 준용되는 가운데 우선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국문전보 및 구문전보를 부활한다. 전화가입자명 변경 등도 1946년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그나마 전기통신시설은 이미 수명이 다되어 고장이 빈발한다. 수리할 수 있는 예산·물자·기술·인원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국민 누구나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전기통신 본래의 사명을 다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일본인은 창고에 보관된 자재와 사업용 비품을 훔쳐가는 등 현금출납 사무자금을 가로채 간다. 심지어 사업예산을 일본인 직원끼리 나누어 그들의 퇴거 자금으로 쓰려했다. 또 직장에서 그전 직책이나 직위에 계속 머무르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인의 행위는 미군이 주둔한 뒤에도 본부와 지방의 각 기관에서 발생했다. 일본인 고위 간부들의 모의로 부산우편국에 집중되는 과초금을 은닉한 다음 이를 일본에 반출하려다가 발각되어 압수당한 사건이 있었다. 또한, 총독부 체신국장이 거금의 사업예산을 횡령하려다 발각된 사건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 (왼쪽부터) 체신부 로고 , 체신사원양성소, 1946년 체신학교 (자료제공=kt사료)


1946년 1월 1일 일본 체신종업원 철수에 따른 국내 체신요원 조기 확보를 위해 체신학교를 신설한다. 전신·우편·공무·유선통신·무선통신·전화기계·외공·타이프·영어과 등으로 편성한다. 3개월에서 12개월 단기 양성과정으로 통신요원의 양성에 주력한다.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2,650여명의 체신요원을 양성한다. 

 

1947년에는 간부요원과 중견요원의 양성교육을 위하여 1년제 간부직 양성교육과정의 전문학교를 세운다. 행정·업무·통신기술·반송기술·무선기술·공무의 교육과정을 두고 우수한 체신요원 양성에 주력한다. 그 후 1957년 7월 10일 체신재학교 설치령 공포 시행으로 문교부 학제에 의한 교육기관으로 설치된다. 2년제 초급대학과정인 체신대학과 3년제 고등 과정인 체신고등학교로 발족한다. 

 

체신대학의 학과로는 통신행정과와 통신공학과가 있었다. 체신고등학교는 통신과·업무과·기계과·선로과·전파과 등 5개 학과가 있었다. 국비장학생으로 월1만 오천원을 지급하고 기숙사 제공 및 취업은 의무적 보장됐다. 원서접수와 시험 장소는 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체신청에서 지방의 우수한 인력이 많이 응시했다. 

 

이와 같이 체신대학과 체신고등학교는 통신사업의 기간요원 양성기관으로 4,265명(대학 1,222명, 고등학교 3,043명)에 달하는 많은 중견간부를 양성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문교부 소관 외 각종학교의 정비방침에 따라 체신학교는 운명을 다 한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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