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21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국토의 분단 38도선 과 남북간 통신단절

이세훈 | 기사입력 2020/05/28 [11:50]

[기획] 한국전쟁 70주년…한국의 전기통신 21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국토의 분단 38도선 과 남북간 통신단절

이세훈 | 입력 : 2020/05/28 [11:50]

[제4기] 미군정통신(1945~1947년) 국토의 분단 38도선 과 남북간 통신단절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소련군은 우리국토를 침입하여 1945년 8월 25일 황해도 해주까지 진입한다. 철도를 38도선에서 절단하는 등 국토의 분단을 꾸민다. 광복 후 얼마동안은 비공식적인 남북왕래가 가능했으나 곧이어 우편물교환이 중단된다. 1945년 9월 13일에는 소련군에 의하여 전신전화선로가 절단됨으로써 남북의 전기통신은 단절된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미육군최고지휘관의 자격으로 ‘미국태평양방면 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 제2호, 제3호를 한국어·영어·일본어로 동시에 공식 발표하여 알린다. 포고 제1호는 38도선을 경계로 한 미국·소련의 분할점령을 발표한 것이다. 제2호는 범죄와 법규, 제3호는 화폐에 관한 규정이다. 3개의 포고문을 발표한 다음 날인 9월 8일 새벽 태평양 미육군 제24 군단은 42척의 군함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한다. 이 포고를 통해 맥아더장군은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일본군 무장을 해제시키고 군정을 실시할 것을 밝힌다. 

 

1945년 9월 8일 미주둔군사령관 하지중장은 ‘조선인에게 고함’ 성명서를 발표하여 민주국가 수립을 위한 평화적 노력을 당부한다.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총독부를 접수한다. 1945년 9월 9일 일본 조선총독의 항복문서에 조인을 받은 하지중장은 9월 11일 아베총독을 파면한다. 마침내 조선총독부는 해체되고 일본군 12만은 무장이 해제된다. 지난 36년 만에 총독부의 일제국기를 내리고 이어 모든 일장기를 없애도록 한다. 

 

미군은 '총독부의 통치체제는 존속시키되 일본인 관리인들은 모두 파면할 것'이라는 미 국무성의 지시를 받고 출발했었다. 그러나 하지중장은 총독부의 항복을 받으면서, 남한의 혼란 상태가 진정될 때까지 아베총독을 비롯한 일본인 관리들을 잔류시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우리 국민들의 맹렬한 반대로 결국 조선총독은 파면되고 미군이 직접통치를 하게 된다. 1945년 9월 19일 아놀드 소장이 군정장관에 임명되고 재한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이라는 군정기구를 발족한다. 

 

▲ (좌) 중앙청 건물 일장기를 내리는 장면 (우) 미군정 성조기를 올리는 장면 (사진제공=국가기록원) 


9월 17일 정무총감을 비롯한 각 국장급 간부들을 파면하고 군정의 초대 체신국장으로 헐리이 중령을 임명한다. 한편, 일본인 통신기술자들을 한국인으로 교체한다. 체신국의 책임간부에 이어 한국인 직원을 임명하여 업무를 습득하고 이를 접수토록 한다. 1945년 10월 16일 체신국의 일본인 간부가 해임되고 한국인 간부가 정식으로 국장 및 과장으로 임명된다. 일본인들은 11월 25일까지 하급직원 소수인원만 남아서 잔무를 처리했을 뿐, 대부분은 그 이전에 이미 해임된다.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담에서 남북한 방송국의 주파수를 서로 협의하여 북한에서도 서울의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또한 남북 우편물 교환도 다시 시작되었으나 전기통신은 끝내 복구되지 못한다. 이후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나 양국 대립으로 결렬되고 만다. 서울에 주재하던 소련영사관과 평양의 소련대표가 서로 통신하기 위해 사용한 선로가 남북간의 유일한 통신선이었다. 그러나 1947년 10월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서울에 머물던 소련 대표들이 철수함에 따라 완전히 폐기되고 말았다.

 

우편물을 제외한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관공서를 통한 공적 교류는 어느 정도 지속한다. 1947년 7월 1일에는 북한의 비료와 남한의 직물을 교환한다. 1948년 5월까지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력을 송전했다. 1947년 12월 송전의 대가로 남한에서 준비한 전기용품을 수송하기 위해 북한의 화물차가 서울에 온 일도 있어 국민들은 남북교류가 재개될 것으로 믿었다.

 

이세훈 

KT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경제문화연구원 ICT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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