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준 칼럼] 대중주도(crowd-based) 사회 이끄는 대한민국

박항준 | 기사입력 2020/05/19 [17:24]

[박항준 칼럼] 대중주도(crowd-based) 사회 이끄는 대한민국

박항준 | 입력 : 2020/05/19 [17:24]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본격적인 뉴노멀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다소 생뚱맞게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찬사를 해외 언론으로부터 듣고 있다.  

 

오는 입국자 막지 않고, 대구를 봉쇄하지 않고, 자가격리 대상자를 어플로 위치 추적하고, 양성자 동선을 전 국민에게 오픈하고, 대상자를 정부예산으로 검사시켰는데, 왜 민주주의 국가임을 보여줬다고 외국 언론들이 극찬을 하는 것일까? 국민들이 정부 시키는대로 잘 따라주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일까? 

 

코로나 19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에 보여준 민주주의는 바로 ‘대중주도(Crowd-based) 민주주의’였다. 2008년 이후 지난 10년간 P2P 대출, 블록체인 가상자산, 공유경제, SNS 모금, 광화문 집회, 국민청원 등으로 보여준 것이 대중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형태였다.

 

그간의 경험들이 대중민주주의로 가는 예행연습적 성격이었다면, 코로나19와 같은 국난에 그간 테스트를 거친 대중주도 민주주의를 실전에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나 일본은 비록 그들이 코로나19를 진정시켰다 하더라도 우리와다른 경우다. 이 두 국가는 긴급상황에서의 공리주의적 목표를 전체주의로 해석하여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이익이나 긴급상황에서는 강력한 국가통제가 정당화되는 군주론적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통제했다는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이 실천한 ‘대중주도 민주주의’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돌아봐야 할 역사가 있다. 바로 나치다. 나치즘이라는 히틀러의 철학이 대중주도(Crowd-based)와는 어떤 차이점 있었을까 구별해 봐야 한다. 

 

우리는 우선 ‘Mass’와 ‘Crowd-based’를 재 정의해야 한다. 어찌 보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Mass’는 목적 없이 모인 대중이다. 자기의 주관된 생각(텍스트)이 없이 모여있는 자연 상태의 사람들을 말한다. 대중가요가 매번 유행이 바뀌는 것도 대중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대중에게 제안하고 이를 대중이 받아들이는 것을 대중문화라고 한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 대중(Mass)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시민의 자유는 오히려 각자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혼란스러운 사회가 되다 보니 ‘자유’가 오히려 피곤의 대상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히틀러는 이를 놓치지 않고 대중(Mass)들을 선동하여 나치즘을 주입시켰고, 당시 독일국민 대부분의 지지를 얻었다. 결국 대중이 자기 생각이 없이 선동자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러시아의 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소설 ‘무무’에서 주인공 게라심은 스스로의 생각 없이 주인의 의지대로만 살던 한낱 농노에 지나지 않았다. 마냥 ‘대중(Mass)’으로 살던 게라심이 스스로 주도적 생각을 갖게 되는 사건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사랑하는 강아지 ‘무무’로 인해 비로소 자신의 ‘자의적 생각(Text)’을 갖추는 존재감 있는 인간 즉, ‘Crowd-based’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이 러시아 농노 해방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대중주도(Crowd-based) 사회’는 생각 있는 개개인의 목표들이 모여 ‘공공의 목표(公共善)’를 이루어가는 사회라 하겠다. 물론 이 중에서도 선동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이 주도하여(Crowd-based)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소속원들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일 대중의 목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도덕적 결함이 있으면 아무리 똑똑하고 높은 지위에 있고, 실행하려는 의도가 옳다 하더라도 ‘대중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가차 없이 퇴출된다. 그 위치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유명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또 대중이 합의(談論)한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데 모두가 함께 고생하고, 함께 양보하는데 동의하고, 불편한 점은 함께 참는다.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목표에 마냥 끌려온 마음이 쉽게 변하는 대중(Mass)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 스스로가 주도하여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데 함께 참여하고 공유하며, 정보를 개방하는 민주주의 형태가 바로 ‘대중주도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돌아보면 코로나19 사태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준 대응전략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외신들이 ‘대한민국의 (대중주도)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중주도의 실천전략 중 하나는 ‘집단지성’이다. 코로나를 극복할 때 어느 의료직원의 아이디어로 확대된 드라이버 스루 검사법이나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민간의료 바이오 기업들에게 테스트기 생산을 위해 긴급히 SOS를 치는 모습은 대중주도 사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집단지성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대중주도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는데 있다. 코로나19의 극복 성공이 ‘뒤로 가다 쥐 밟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대중주도(crowd-based) 사회가 도래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쥐를 잡았는지 연구하고, 이를 우리의 미래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대중주도(crowd-based)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겠다. 

 

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부회장 박항준 약력

현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부회장

현세한대교수

현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현중기부액셀러레이터 (주)하이퍼텍스트메이커스대표이사

현 (사)한국블럭체인기업진흥협회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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