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WBA 플라이급 챔프 김태식의 라이프 스토리

조영섭 기자 | 기사입력 2020/05/04 [12:27]

[조영섭의 복싱 스토리] WBA 플라이급 챔프 김태식의 라이프 스토리

조영섭 기자 | 입력 : 2020/05/04 [12:27]

지난 주 김태식 챔프가 2차례에 걸쳐 기자의 체육관을 방문했다. 이에 발맞춰 기자는 아마추어  중앙심판에 재직하고 있는 현천일 상임심판위원과 신성수 현 서울심판장, 그리고 이용장 중앙심판을 초대해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눴다. ‘매의 눈’ 이라 불리는 김태식은 WBA 국제심판 김병무와 동양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 김응식을 언급하며 이들을 참된 복싱인 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 신성수 김태식 챔프 현천일 이용장 중앙심판위원     ©조영섭 기자

 

김태식 선수의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했던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는 현천일(용인대)은 그가 지난 서울 심판장 재직시절 상임심판위원으로 진급과 동시에 서울 심판장을 반납하면서 우선권으로 차기 심판장을 지명 할 때 본인과 전국체전 및 대통령배 대회에 서울대표로 함께 참가했던 대학 동기이자 절친 신성수(용인대)를 배제하고 지방에서 상경한 이용장(전주대)카드를 뽑아들고 차기 서울심판장에 선임되도록 해 신선한 충격을 전달했다. 

 

결국 돌고 돌아 복싱계 도덕군자 신성수가 서울 심판장에 임명되었지만 현천일의 통큰 결단에 고개가 숙여진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우리 시대에 고질적인 병폐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영조는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했고 그의 손자인 정조도 탕평책을 계승하여 이들 모두 성군(聖君)으로 불려지지 않았던가.  

 

▲ 김태식 챔프(좌측)와 현천일 상임 심판위원     ©조영섭 기자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은 통일 베트남을 북부 중부 남부 3개로 나눠 인재를 능력별로 고루 등용했고 당태종 이세민도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위징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재상에 임명하자 위징은 중국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23년간 태평성대로 화답하지 않았 던가. 미국에서도 대통령 닉슨이 정적인 록펠러의 핵심 브레인 키신저를 전격 발탁하자 그는 중국과는 미·중수교를 소련과는 데탕트(detente)로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다. 인사가 만사다.

 

김태식 챔프와 어우러져 담화를 나누다 문득, 우리시대에 언제 마지막 챔피언이 탄생하였나 헤어보니 14년 전인 2006년 12월 17일 서울의 충무 아트홀에서 벌어진 WBC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멕시코 챔피언 로들포 곤잘레스를 맞이한 지인진(대원체)이 12회 사투 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제52대 챔피언에 등극한게 21세기 마지막 챔피언이다. 마치 1921년 가야산에서 포획을 마지막으로 한국산 호랑이가 절멸하듯이 프로복싱에도 그런 참혹함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     ©조영섭 기자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13체급의 동양챔피언 명단에 국내복서의 이름이 단 한명도 등재되어 있지 않다. 차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전초기지인 마이너리그에서 조차 싹수있는 유망주가 고갈되어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건 전적으로 한국복싱의 토양이나 수질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아마추어 무대에선 억대 연봉자가 서너명 포진된  전례를 살펴보면 프로복서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얼마 전 필자가 읽은  신문사설 내용 중 국내복싱 현실과 일맥상통 하는 구절이 있어 몇 자 적어본다.  

 

(전략) ‘매년 여름에 부는 태풍도 그렇다. 태풍이 없는 게 좋을듯하지만 어부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워낙 피해가 막심하니 드러내놓고 말할 순 없어도 그들에게는 태풍은 꼭 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와야 바다가 발칵 뒤집히고 그래야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유기물들이 떠오르고 이걸 먹으려고 몰려드는 플랭크톤을 따라 새우나 오징어가 떼지어 몰려드니 말이다.’ 

 

우리가 맛좋고 저렴한 물고기와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사실 태풍 덕분이고 태풍이 풍요로운 바다를 만드는 묘한 역설이란 내용의 글이다. 그렇다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세파 는 어쩔수 없기에 감내해야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우리가 몰랐던 유익한 것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쁘게만 보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기회를 찾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태풍이라는 예방주사를 맞고서라도 만선(滿船)을 기다리는 어부의 심정처럼 복싱스토리를 시작해본다.

 

이번 주 복싱스토리는 지난주 예고한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이다. 20전을 싸우는 동안  독일병정처럼 두들겨 부수는 화끈한 그의 복싱 스타일에 팬들은 매료됐다. 관중들로 하여금 냉정을 잃고 격정의 파도에 몸을 실은 듯 흥분과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던 복서 김태식은 71년 중학교 2학년때 상경한다. 

 

▲ WBC 밴텀급 챔피언 루페 핀토르와 김태식(우측)  

정통복싱에 입문하기 전 동아체육관에서 최문진에게 골드체육관에선 이승훈에게 본인 표현대로 쌍코피가 터질 정도로 일방적으로 난타당해 길거리 싸움과 정식복싱은 큰 차이점이 있음을 느꼈다. 76년 3월, 21살에 필승체육관에 등록한 김태식은 유소년 시절 각종 사고로 이미  손가락과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정상적으로 훈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이 헨디캡은 훗날 그가 복서로 입지를 구축할 때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경기에서 재발해 3차례나 병원 신세를 지면서 상승세에 발목이 잡힌다. 그해 12월 킹스컵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 마수년에게 판정패 한다. 마수년은 당시 김태식의 펀치는 칼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날카로웠다고 기자에게 후일 회고했다. 

 

77년 9월 프로에 대뷔한 그는 난적 고기봉에 3회 KO패를 당한다. 고기봉은 71년 아마추어 전국선수권을 차지한 베테랑 복서로 군복무 관계로 뒤늦게 프로에 데뷔한 복서였는데 김태식은 재대로 임자를 만남 셈이다. 절치부심한 김태식은 그해 신인왕전에서 4연승(2KO승)을 거두고 최우수 복서에 선정돼 상금 20만원을 받는다.

 

김태식은 이후 연속 KO 행진을 하면서 당시 최고 인기복서였던 박종팔, 황충재, 김사왕을 2선으로 밀어내고 문화체육관에서 1경기당 최고의 입장 수입인 340만원을 기록한다. 그의 권투는 마치 쇠망치로 온몸 구석구석을 뼛속까지 피멍이 들 정도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난타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는 복싱을 구사했다.

 

79년 3월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이 1차 방어전을 앞두고 김태식이 있는 서울역 골드체육관으로와 양선수가 스파링을 한적이 있다. 당시 6전 5승(3KO)1패를 기록한 김태식은 김성준을 샌드백 두들기듯 일방적으로 난타, 2회가 끝나자 48전을 싸우면서 단한차례도 KO패가 없는  맷집의 왕자 김성준이 백기를 들고 투항할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80년 2월 17일 김태식은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와 타이틀전을 치른다. 미국과 중남미 복싱이 강한 이유는 그지역 챔피언이 곧 세계챔피언이라 할만큼 수많은 강호들과 쉴새 없이 경기를 치르면서 치열하게 경쟁한 후 한명의 진정한 무림(武林)의 왕자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예상을 깨고 김태식은 이 경기에서 단 4분 11초만에 KO승을 거두고 국내복서로 10번째 세계정상에 올라 기염을 토한다. 

 

▲ 타이틀 1차방어전에 성공한 김태식 

 

최초의 강원도 출신 챔피언 김태식은 당시 대통령도 강원도 원주 출신 최규하 대통령, 코미디 황제는 강원도 고성 출신 이주일, 원진 그룹 총수도 강원도 사천출신 김상기 회장 이었다. 이에 편승해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진만 동부그룹회장, 박용학 대농그룹회장, 전종윤 삼양식품 회장 등 강원도 출신 재계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금강회(金剛會)라는 단체에서 3천만원을 갹출, 지원받기도 했다. 

 

당시 김태식이 거주하던 신반포아파트 인근에 살던 톱가수 남진이 그를 초청해 만찬을 베풀어 줬고  춘천고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이주일은 김태식을 친동생처럼 아끼면서 학창시절 패싸움하다 상대가 머리로 이주일의 코를 강타, 코가 주저앉으면서 얼굴이 이상하게(?)된 무용담을 흉금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친숙하게 지냈다. 

 

김태식은 6월의 1차방어전에선 수양버들처럼 흐느적 거리면서 지능적으로 헤드버팅을 하는 필리핀의 아로살에게 4회에 턱에 골절상을 입는 악조건속에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 15회 판정승을 거뒀고 80년 12월 13일 2차방어전에서 29승(15KO승)5패를 기록한 피터 마테블라에게 1ㅡ2 15회 판정패를 당한다. 80년 한해는 국내외에서  총15차례의 세계타이틀전이 벌어져 4승11패의 참담한 성적을 냈고,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 김태식 등 4명의 챔프가 줄줄이 벨트를 푼 악몽의 한해가 제1차 암흑기 였다.

 

81년 8월 김태식은 방향을 돌려 WBC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챔피언은 30전 22승 (16KO승)1무 8패를 기록한  멕시코의 안토니오 아벨라로 당시 그는 8연속 KO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에 맞선 김태식은 5분 46초만에 백기를 들고 사실상 복싱을 접는다. 굳이 패인을 꼽자면 김태식은 플라이급에선 체격이 너무 왜소했다. 이 경기를 시발로 한국 프로복싱은 1년 7개월동안 이승훈, 김용현, 김사왕, 황준석, 장정구, 최충일 등이 세계타이틀전에서 12연패를 당하며 날개 없는 추락을 하며 제2차 암흑기를 맞이한다. 

 

이어진 2007년 지인진의 타이틀 반납으로 오늘날까지 무관으로 전락한 작금의 현실이 한국 프로복싱의 제3차 암흑기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싱협회가 5개 단체가 난립한 경우도 유사 이래 처음이다. 이를 마뜩찮게 여기는 복싱인들은 끓어오르는 감정의 파고를 낮추고 냉정하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면서 복싱 부활에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벽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한국복싱의 현실이기에 김태식을 위시한 전 복싱인이 편향된 시각을 버리고 시멘트처럼 뭉쳐 대동단결해야 하는 이유다.    

 

조영섭

문화저널21 복싱전문기자

 

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현)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전) 82년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 플라이급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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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진 2020/05/05 [09:58] 수정 | 삭제
  • 기사 잘읽었습니다^^
  • 동수 2020/05/04 [18:25]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새내기 2020/05/04 [18:11] 수정 | 삭제
  • 매번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배도령 2020/05/04 [18:06] 수정 | 삭제
  • 김태식 전설님 강원도 분이셨군요. 재밌는기사 잘보고 갑니다~^^
  • 베냐민 2020/05/04 [13:48] 수정 | 삭제
  • 한국복싱의 부흥을 기대하며 늘 좋은 글 보여주시는 한국복싱의 역사 조영섭 관장님 감사드립니다
  • 이상기 2020/05/04 [13:33]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신성수 2020/05/04 [13:10] 수정 | 삭제
  • 그 시절..김태식 선배는 작은체구에서 나오는 핵주먹으로 많은 선수에게서 ko를 만들어냈다. 이젠 세월은 어쩔수가 없는 모양이다..후배로써 김태식선수의 강하게 휘두르는 양 훅과 어퍼컷..은 환상 그 자체였었다..그 시절 난 아마선수로 활동하고 있을때였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김태식 선배를 보니 감회와 쓸쓸함이 와 닿는다~~항상 조영섭 관장께 고마움을 느낀다..옛 추억을 만들어줘서....
  • 펑크 2020/05/04 [13:04] 수정 | 삭제
  • 바늘로 하나 하나 뛔듯, 치밀한 취재를 하는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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